“좋은 마음보다 어떻게 썼는지 알고 싶어요.”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기부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한국 기부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감성에 의존하던 ‘묻지마 기부’ 대신, 단체의 건전성을 깐깐하게 따지는 ‘스마트 기부’가 새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부 감소의 원인이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기부 단체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경제난보다 무서운 ‘신뢰의 위기’=지난해 12월30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기부 경험과 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61.5%에 그쳤다. 전년(66.3%) 대비 4.8%포인트 줄었다.
주목할 점은 기부를 꺼리는 진짜 이유다. “최근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62.0%로 여전히 1위를 차지했지만, 이는 상수(변하지 않는 수)에 가깝다. “기부 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 기부를 주저한다”는 응답이 30.1%로, 2024년 23.6%에 비해 6.5%포인트나 늘었다.
“기부 단체가 모금을 위해 기부자를 속이기도 한다”는 응답도 56.3%에 달했다. 반면 “단체가 윤리적으로 운영된다”고 믿는 사람은 33.1%에 불과했다. 잇따른 횡령 사건과 불투명한 회계 처리 등으로 잠재적 기부자 10명 중 6명은 단체를 의심하는 셈이다.
◆“감성팔이 대신 영수증 보여주세요”=과거에는 어려운 이웃의 사연에 눈물을 흘리며 지갑을 열었다면, 요즘 기부자들은 ‘내 돈의 행방’을 요구한다. 기부가 단순히 ‘나누는 행위’가 아니라, 효용과 투명성을 따져야 할 ‘가치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
응답자의 85.4%는 “기부금 사용 내역을 공개적으로 발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78.4%는 “내가 낸 돈의 사용처를 알 권리가 있다”고 딥했다.
대형 단체의 유명세만 믿고 자동이체를 신청하던 관행도 깨졌다. 응답자의 71.4%는 “스스로 투명하다고 판단되는 기관을 직접 선택해 기부하겠다”고 답했다. 자신이 검증한 곳에만 후원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화·투명성 요구도 높아=전문가들은 기부 단체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보다, 기업처럼 경영 투명성을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응답자의 65.9%는 “트렌드에 맞게 기부 방식도 디지털화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기부금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나, 기부자가 후원 대상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앱 서비스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엠브레인은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은 한계에 달했다”며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이터 증명’ 능력이 향후 기부 단체의 생존을 가를 것”이고 밝혔다.
이휘빈 기자 vinyvi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