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까다로운 삼중음성유방암에서 고지혈증 치료제로 널리 사용돼온 ‘피타바스타틴’이 항암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경우에도 효과를 유지해 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전략으로 주목된다.
서재홍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 연구팀은 피타바스타틴이 기존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는 삼중음성유방암 세포의 생존을 직접 차단해 암 성장을 억제하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유방암 가운데서도 치료가 가장 어려운 유형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호르몬 치료제나 HER2 표적치료제를 적용할 수 없어 파클리탁셀과 같은 강한 항암화학요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료 이후에도 암이 재발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일부 암세포가 살아남아 다시 증식하기 때문인데, 이런 세포가 바로 ‘암줄기세포’다. 암줄기세포는 항암제에 잘 반응하지 않고 재발과 전이를 유도하는 핵심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암줄기세포를 포함한 삼중음성유방암 세포에서는 ‘Mcl–1’이라는 단백질이 과도하게 증가한다. Mcl–1은 암세포의 사멸을 막아 항암 효과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이를 직접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연구팀은 인공지능 기반 분석을 통해 피타바스타틴이 Mcl–1 단백질의 특정 결합 부위에 직접 붙어 기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암세포가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작용 기전이 확인된 것이다.
피타바스타틴은 오랜 기간 고지혈증 치료제로 사용돼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실제로 피타바스타틴을 투여하자 암세포 내부에서 에너지 생성 기능이 빠르게 붕괴됐다. 세포에 해로운 활성산소는 증가한 반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인 ATP는 감소했다. 그 결과 암세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사멸하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기존 항암제로 제거하기 어려웠던 암줄기세포의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재발과 전이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세포까지 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파클리탁셀에 내성을 가진 암세포에서도 피타바스타틴은 효과를 보였다. 내성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Mcl–1과 P–당단백질(P–gp)의 발현을 낮췄고 암세포 생존을 돕는 신호 전달 경로도 억제했다. 그 결과 항암제에 잘 반응하지 않던 상황에서도 암세포 성장이 강하게 억제됐다.
또 피타바스타틴과 파클리탁셀을 함께 사용했을 때는 암 억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병용치료 가능성도 확인됐다.
서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고지혈증 치료제인 피타바스타틴이 삼중음성유방암에서 암세포 생존의 핵심을 직접 겨냥하는 새로운 치료 후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특히 기존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에서도 적용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실험 혈액학 & 종양학(Experimental Hematology & Oncology)’(IF 13.5)에 게재됐다.
김미혜 기자 roselin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