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겨울이다. 농한기의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추위로 근육이 굳고 몸살 기운이 들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문득 어린 시절 주말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아버지를 따라 간 등산로 입구에는 엄청난 크기의 칡뿌리를 늘어놓고 즉석에서 즙을 내주던 좌판이 있었다. 생칡을 씹어 먹기도 하고, 막 짜낸 칡즙을 마시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는 도대체 왜 저걸 먹나 싶었지만 약사가 된 지금 다시 만난 칡은 겨울철 건강을 지켜주는 우리 땅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농사를 짓거나 산을 가꾸는 이들에게 칡덩굴은 나무를 감고 올라 성장을 방해하는 골칫거리기도 하다.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칡은 알고보면 버릴 것 하나 없는 귀한 식물이다. 뿌리는 ‘갈근’, 덩굴은 ‘갈만’, 잎은 ‘갈엽’, 꽃은 ‘갈화’, 씨앗은 ‘갈곡’이라 부르며, 예로부터 모든 부위를 약으로 활용해왔다. 그 중에서도 겨울철 땅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뿌리 ‘갈근’은 감기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훌륭한 약재다.
저녁 무렵 퇴근길에 “몸이 으슬으슬 춥고 미열이 있는데 감기가 오는 것 같다”며 약국을 찾아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갈근(칡뿌리)이다. ‘동의보감’에는 갈근에 대해 ‘머리 아픈 것을 낫게 하고, 땀구멍을 열어 땀이 나게 해 뭉친 것을 풀어준다’고 기록돼 있다. 찬 바람을 맞았거나 환절기·겨울철에 잘 나타나는 두통, 미열, 몸살 기운 등 전형적인 감기 초기 증상에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목과 어깨 같은 부위의 뭉침을 풀어주는 데도 도움이 되며, 갈증을 없애고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나는 증상(번갈)을 멈추고, 음식 맛을 나게 하며, 소화를 돕고 가슴의 열을 없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이가 감기로 열이 나 밥을 잘 먹지 못하거나 보챌 때도 쓸 수 있는 약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