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안부를 물을 때도 ‘밥’을 떠올리는 한민족. 한국인의 밥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쌀을 비롯한 곡물, 즉 탄수화물이다. 경기 수원 국립농업박물관에선 곡물을 통해 식문화 변화를 살펴보는 전시 ‘탄수화물 연대기’가 2026년 3월6일까지 열린다. 전시와 연계 학술대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바탕으로 우리 국민이 먹어온 쌀·보리·밀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1만5000년 전부터 쌀과 함께한 한민족
1997∼1998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에서 진행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고대 볍씨가 발견된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1만3000∼1만5000년 전 것으로 밝혀진,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다. 이 벼는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단계인 ‘순화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벼 볍씨는 경기 고양시 가와지마을에서 출토됐는데 약 5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까진 쌀을 빻아 떡처럼 쪄 먹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까지는 벼를 논에 바로 심는 직파법을 이용하다 고려말 중국에서 모내기법이 전래한다. 1429년(세종 11년)에 간행된 농업서 ‘농사직설’엔 직파법·모내기법·건답법(마른 논에 씨를 뿌렸다가 장마철부터 물을 대어 논벼처럼 재배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엔 관개시설이 확충되며 이모작이 가능하고 수확량도 많은 모내기법이 널리 퍼졌다.
이때 벼와 이모작 작물로 많이 키운 것이 보리다. 보리는 늦가을 파종해 다음해 초여름 수확하기 때문에 논에 벼가 자라지 않는 시기에 기르기 적합했다. ‘농사직설’엔 보리를 두고 ‘신곡과 구곡 사이를 잇대어 먹는 것이어서 농가에서 가장 긴요하게 여기는 곡식’이라고 기록돼 있다. 늦봄, 지난해 가을 수확한 쌀이 다 떨어지고 보리 수확까지 기다려야 할 때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렸고 이를 ‘보릿고개’라 불렀다. 쌀은 양반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곡식이었기에 일반 백성은 보리밥을 일상적으로 먹었다.
부족했던 쌀이 풍족해지기까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산미 증식 계획에 따라 쌀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증산량보다 수탈량이 더 많아 조선인들은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았다. 해방 이후에도 인구가 늘고 전쟁까지 겪으며 쌀 부족은 이어졌다.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은 1946년부터 밀을 구호양곡으로 도입했다. 6·25전쟁 시기 부산에선 이북 피란민이 메밀 대신 밀을 사용한 냉면인 ‘밀면’을 만들었다. 1963년엔 국내 최초의 즉석 라면 ‘삼양라면’이 세상에 나왔다. 당시 가격은 10원. 국민들은 비교적 저렴하고 간단하게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산 밀이 대량으로 싼값에 들어오면서 국산 밀이 설 자리는 점점 줄었다.
해방 이후 정부는 쌀 소비를 줄이자는 ‘절미운동’을 전개하며 그 자리를 밀과 다른 곡물로 채웠다. 1956년 농림부·내무부·재무부 합의로 1년 동안 쌀 50만석(약 7만2000t)을 절약하고 혼분식을 장려하는 운동을 펼쳤다. 1969년 음식점·여관에서 매주 수요일·토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쌀로 만든 음식 판매를 금지하는 ‘무미일(無米日)’을 지정했으며,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서도 절미운동이 추진됐다. 1973년 내무부·문교부·농수산부·보건사회부 장관은 ▲양식판매업소에서 밥 판매 금지 ▲양곡가공업소에서 쌀 원료 과자 판매 금지 등을 담은 ‘혼분식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를 어긴 업소는 1개월 이상 6개월 이하의 영업정지 또는 허가취소 처분을 받았다.
1960년대 말 허문회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는 재래종에 비해 30% 이상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개발했다. 1970년대 초 통일벼가 전국적으로 보급됐고, 1976년 쌀 자급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통일벼는 푸석푸석하고 찰기가 적어 “보리밥 맛이 통일쌀보다 낫다”라는 말이 돌기도 했으며 냉해에도 약했다. 통일벼 재배는 점차 줄어들다 1992년 중단되기에 이른다.
쌀이 남아돌고 다이어트 때문에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사람도 많은 요즘, 불과 50년 전 쌀이 부족했던 시대는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탄수화물은 몸과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필수 영양소다. 오늘 점심은 따뜻한 밥 한공기와 반찬으로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해보는 건 어떨까.
수원=황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