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꼬막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 참꼬막·새꼬막·피꼬막(피조개)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식탁에서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껍데기에 털이 없고 주름골이 17∼20개로 적은 참꼬막, 껍데기 표면에 털이 있고 주름골이 30∼34개로 더 많은 새꼬막, 가장 크고 주름골도 40여개나 되는 피꼬막. 그러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꼬막을 다른 조개와 구별 짓는다. 꼬막을 깔 때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다.
홍합 같은 조개류는 껍데기가 완전히 벌어질 때까지 가열 조리한다. 껍데기가 안 벌어지면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여겨 먹지 않고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꼬막은 패각이 입을 벌리지 않도록 살짝 데쳐 먹는 게 정석이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 ‘태백산맥’에서 묘사한 대로다.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 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 그 슬쩍이라는 것이 말 같지 않게 어려운 것이었다.”
이 어려운 조리법 덕분에 꼬막은 더 맛있다. 본래 연체동물은 과하게 익히면 맛이 떨어진다. 열을 받으면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살이 단단해지고, 수용성 감칠맛 성분과 유리 아미노산은 삶은 물로 빠져나간다. 그물처럼 엉긴 단백질 사이에 맛 성분이 갇혀 혀가 그 맛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데다가 질겨지기 쉽다. 하지만 꼬막은 살짝 삶아서 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을 때 먹는다. 껍데기를 까면 가득 고인 검붉은 액체를 주르륵 빨아 마신다.
보통 조개류는 혈액 속에 구리 성분의 헤모시아닌이 들어 있어 체액이 투명하거나 옅은 푸른빛을 띤다. 하지만 유독 꼬막류는 사람의 피와 비슷한 철 성분의 헤모글로빈을 많이 품고 있다. 속살이 붉고 삶았을 때 초콜릿색이 도는 이유다.
갯벌은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다. 헤모글로빈은 헤모시아닌보다 산소 결합력이 더 높아 꼬막이 열악한 갯벌에서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 그 덕분에 꼬막은 사람의 건강에도 유익한 식품이 된다. 100g당 철분 4∼6㎎을 함유하고 있으며 흡수가 용이한 헴철 형태여서 겨울철 철분 보충에 도움이 되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꼬막 중에 참꼬막을 제일 맛 좋다고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만하다. 참꼬막은 크기는 비교적 작아도 헤모글로빈이 풍부해 맛이 깊고 진하다. 양념 없이 삶아서 바로 까먹으면 감칠맛이 풍부한 짭짤한 풍미와 특유의 바다 내음을 뚜렷이 느낄 수 있다.
반대로 그런 진한 풍미 때문에 참꼬막보다 쫄깃한 새꼬막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참꼬막이 더 비싸다보니 우리 식탁에 가장 친숙하게 오르는 꼬막이 새꼬막이기도 하다. 새꼬막은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살 맛이 좋다. 꼬막무침이나 밥 위에 수북이 올려 비벼 먹는 꼬막비빔밥의 주인공도 바로 이 녀석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마시리 벌교참꼬막’에서는 참꼬막과 새꼬막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살짝 익힌 참꼬막은 테이블에서 직접 도구를 이용해 까먹는다. 새꼬막은 양념에 무쳐낸다. 서너명이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푸짐한 양이다. 겨울 갯벌 속에 자란 꼬막을 맛보면서 참꼬막이든 새꼬막이든 다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