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진우 기자]
병오(丙午)년,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천간(天干)인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중 세 번째인 ‘병’ 과, 지간(支干)인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 중 일곱 번째인 오(말)가 만난 해다.
튼튼한 네 다리로 인간이 길들인 가축 가운데 사람이 탈 수 있으면서도 가장 빠른 속도와 지구력을 지닌 동물이 바로 말이다. 말은 불의 기운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에 천간에서도 붉은색 불의 기운으로 해석되는 ‘병’이 겹쳤으니, 각종 언론에서도 올 한해를 역학(曆學)에 빗대 굳센 의지를 바탕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풀어놓고 있다.
탈 수 있는 첫 가축에서 레저로···신화·소설에도 나오는 친숙한 동물
이른바 자가용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에게는 자전거란 참으로 요상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안장 위에 올라 균형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아 ‘와당탕’,‘쿠당탕’ 넘어지면서 무릎이 여러 번 까져야 했지만, 일단 올라타고 균형만 잡으면 걸어서는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도 20~30분이면 가게 되니 말이다.
말도 마찬가지였을까? 인간이 탈 수 있고, 운송과 역용으로 활용된 말의 역사는 기원전 3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유용성이 얼마나 컸던지 19세기 산업혁명 시기까지 무려 5000여년 넘게 말은 주요 운송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런 연유로 현재까지도 자동차 엔진이 가지는 힘을 여전히 ‘마력’(horse-power)이라는 단위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화와 전쟁에서도 말은 빠지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날개가 달린 백마 페가수스가 등장하고, 동양에서는 역사와 소설의 경계에 놓인 삼국지 속 여포의 애마 ‘적토마’가 있다. 적토마가 실제 붉은색을 띠었는지 아니면 갈퀴 등이 붉은색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방천화극(方天畵戟)이라는 무지막지한 무기를 든 여포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우를 태우고 하루에 천리를 달렸다고 하니, 전설 속에서도 ‘말 중의 말’이었음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우리 역사에서도 말은 신성한 존재로 등장한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전해지며, 신라시대 주요 고분 중 하나로 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가 있다. 날개가 있다는 점에서 하늘을 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대에서 말은 스포츠와 레저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마사회가 주관하는 경마산업이 말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 일부를 축산발전기금으로 출연해 축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말산업육성법 제정 이후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총 3차례에 걸쳐 ‘말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이 수립된 바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말산업은 저변 확대와 국산말의 활용성 제고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 ‘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을 맞아 획기적이고 현실적인 산업 육성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김동수 한국장제사협회장
말과 함께한 36년···“건강한 말은 발굽에서 시작”
영국·일본 오가며 기술 습득
국내에 기술전수 교육 앞장
몽골과 협력으로 영역 넓히고
프로승마로 가치 확장 욕심
“어릴 때부터 자라나는 발굽을 관리해주고, 말에게 편자라는 신발을 맞춰 신겨주는 사람이 장제사입니다. 발굽 상태에 따라 말의 신체에 무리가 따를 수 있어, 제대로 자라게 하려면 이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 수의사가 되어야 진정한 장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동수 한국장제사협회장의 말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직업인 장제사. 그가 장제사의 길에 들어선 건 벌써 36년 전의 일이다. 에버랜드 동물원 출신으로 삼성승마단이 생기면서 장제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말산업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장제기술을 익혔고, 일본에서도 다시 장제기술을 배워 지난 2014년 현재의 장제사협회를 꾸렸다.
그는 “일본에 장제와 관련해 유명한 교수님이 계셔서 배우러 갔었는데 ‘한국에서 오는 연수생들은 왜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하느냐?’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게 뭐였나 하면 ‘말굽을 어떻게 깎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냐?’는 질문이었는데, 매번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하고 갔었다는 것이었다”는 그는 “배워온 기술이 국내에서 전수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협회를 만들고, 장제교육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당시 10명 정도의 회원으로 협회를 시작했다는 그. 그때보다 지금은 장제사 수가 많이 늘긴 했지만 상황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말산업 육성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국산말 생산 농가들의 어려움이 여전하다보니 장제를 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점이라고.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몽골과의 농축산분야 협력사업이다. 김 회장은 “몽골이 보유한 말 숫자가 세계에서 6~7위 정도 되는데, 장제가 활성화 돼 있지 않다. 그래서 국내에서 협회를 통해 보수교육을 주로 시행하고, 자격증이 있는 장제사들이 몽골에서 일하면서 현지인들을 가르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내 말산업 활성화를 위해 프로승마를 기획하고 있다. 훈련된 국산말이 많이 경기를 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이 경기를 통해 마주가 보유한 말의 가치를 인정받아 수익을 높일 수 있게 하자는 게 골자다.
김동수 회장은 “말 산업 자체가 굉장히 넓다. 좋은 말을 낳아야 하고, 이걸 또 잘 훈련시켜서 좋은 말을 만들어야 하고, 이러기 위해서는 장제를 비롯해 수의학과 다른 분야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며 “우리도 외국에서 잘 훈련된 말을 비싸게 사다 쓰고, 늙으면 버릴 게 아니라 국산말을 잘 훈련시켜서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노력이 쌓이면 국제적으로 ‘한국말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이게 바로 국내 말산업을 육성하려는 목적일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국내 말산업이 한층 발전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