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고성진 기자]
대전·충남, 광주·전남 등 권역별 행정통합 논의가 ‘수도권 일극 체제 완화’라는 명분 아래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농정·지역 전문가와 원외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정책 목표와 수단이 어긋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겠다면서 행정구역을 키우는 방식이 과연 실효적인 해법인지 불분명한 반면, 통합 과정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권력·재정·정책 집중은 농촌과 주변을 더욱 소외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행정통합이 균형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농촌과 지역사회를 중심에 둔 재설계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당은 지난 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광주·전남 통합을 넘어 광주·전남·전북을 아우르는 ‘500만 호남대통합’을 제안하면서도, 주민주권 원칙과 농촌 우선, 지방자치 강화, 공공 영역 확대를 통합의 핵심 기준으로 제시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통합이 또 다른 차별과 소외를 낳아서는 안 된다”며 “주민투표를 통한 실질적 통합과 농촌·농민에 대한 재원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혁신당 역시 절차와 분권 없는 행정통합에 우려를 표했다. 서왕진 원내대표는 “통합의 무게만큼 정부는 통합 이후 삶과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며 시민과 정당이 함께 참여하는 초당적 협의체 구성을 촉구했다. 그는 자치·재정 권한 보장 없이 추진되는 통합은 내부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분권·산업·생활권 구도의 전환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농업·농촌 관점에서의 구조적 우려도 제기된다.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은 “광역 단위 통합 논의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 내부의 다양한 공간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려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울·경 메가시티 논의에서도 산업과 도시 생활권 중심 전략만 부각됐을 뿐, 함양·산청·하동 같은 농촌 지역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며 “이 같은 방식은 농업과 농촌을 구조적으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전북 통합 논의 역시 특정 거점과 산업 공간만 강조될 경우 농업 중심 지역과 군 단위 지역은 통합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이사장은 “통합이 의미를 가지려면 농업·농촌 문제, 지역 거버넌스, 대학과 지역의 관계 같은 사안들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현재처럼 정치적 구호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통합은 지역 전체의 문제를 풀기보다 또 다른 불균형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승수 농본 대표(변호사)는 정책 논리와 절차 측면의 문제를 짚었다. 그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정책 목표와 광역 행정통합이라는 수단 사이에는 분명한 불일치가 있다”며 “행정구역을 키운다고 해서 수도권의 인구와 자본, 산업이 분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제시하는 ‘특례’에 대해서도 “대부분 산업·기업 중심 특례일 뿐, 고령화가 심각한 농어촌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특례마저도 통합 지역 내부에서 특정 거점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며 농촌 소외 우려를 제기했다.
절차적 정당성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하 대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부터 하자는 식의 추진은 ‘묻지마 통합’에 가깝다”며 “기초지자체 통합조차 장기간 공론화가 필요한데, 광역 간 통합을 이렇게 촉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혼란과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적으로 주민투표가 의무가 아니더라도,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정부라면 주민투표 없는 통합은 정당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은 행정통합이 지방자치 자체를 훼손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광역 통합이 이뤄지면 권력과 행정 기능은 필연적으로 대도시에 집중된다”며 “그 결과 중소도시와 읍·면 지역은 인구 감소와 기능 약화라는 이중의 타격을 받게 된다. 이른바 ‘빨대 효과’”라고 말했다. 그는 “규모의 경제만 강조하지만, 규모의 불경제와 지역 내 불균형은 외면되고 있다”며 “통합이 지역 간 균형발전은커녕 지역 내부의 불균형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장은 또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이 실패해 온 이유는 중앙정부 주도의 계획 때문”이라며 “이번 행정통합 역시 중앙의 구상과 지시에 따라 지역이 들러리로 서는 방식이라면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요한 사안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충분한 기간을 두고 공론화와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도 “분권 없는 행정통합은 또 다른 중앙집중과 내부 불균형을 낳을 뿐”이라며, 주민투표 없는 특별법 추진과 대규모 국고 지원 중심의 통합 모델이 지역 간 형평성과 민주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우려 속에 국회에는 지난 5일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국민투표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행정구역 개편을 넘어 지방자치 구조와 주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공공정책 사안인 만큼,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 주민의 동의를 받아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청원은 2월 4일까지 5만 명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김경욱·고성진 기자 kimkw@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