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농협 개혁은 낯선 단어가 아니다. 비위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감사가 진행됐고, 그때마다 쇄신과 혁신을 약속하는 목소리가 반복돼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개혁의 열기는 잦아들었고, 농협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개혁 피로감’이라는 말이 농업 현장에서 먼저 나오는 이유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정부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범정부 합동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농협도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개혁기구를 공식 출범시켰다. 단일 부처 점검이나 내부 자정에 맡기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와 농협 모두 한 단계 높은 수위를 택한 셈이다.
정부의 판단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농협 문제를 더 이상 내부 관리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러 부처와 감사원이 동시에 참여하는 합동 감사는 조직 운영과 통제 체계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감사 결과에 따라 제도 개선과 후속 조치를 병행하겠다는 방침도 같은 맥락이다.
자의든 타의든 농협의 대응 역시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법조계와 농민·소비자단체, 학계 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지배구조와 선거제도, 내부 통제 강화까지 공식 의제로 올렸다. 내부 논의에 머물던 개혁 과제를 공개적인 논의 구조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다만 농협 개혁의 성패는 결국 ‘실행력’에서 갈린다. 위원회 구성과 감사 착수는 출발선에 불과하다. 그동안 농협이 바꾸지 못했던 것은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변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충돌과 부담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권한 조정과 선거제도 손질, 내부 견제 강화는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다.
농협은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협동조합 조직이다. 개혁의 결과는 조직 내부 평가가 아니라 농민과 조합원, 국민의 신뢰로 증명돼야 한다. 감사 이후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누가 어떤 책임을 졌는지가 개혁의 진정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이번 농협 개혁 논의의 배경에는 농협중앙회장을 둘러싼 개인 비리 의혹이 자리하고 있다. 개혁의 초점이 개인에게만 맞춰져서는 곤란하지만, 개인 문제를 덮은 채 구조 개혁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개인의 일탈이 조직 전체의 개혁 논의로 확장됐다는 사실은, 농협의 권한 구조와 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 책임은 분명히 정리하되,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말을 결과로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
김경욱 농업부 기자 kimkw@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