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간사하면서도 적응이 빠르다. 밍밍한 저지방 우유도 2∼3주만 참고 마시면 나중엔 고소한 일반 우유가 오히려 느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쌀밥은 이 법칙을 비껴간다. 잡곡밥을 매일 먹다가도 갓 지은 하얀 쌀밥을 한숟갈 뜨면 “아, 그래 이 맛이지” 하며 무장해제 된다. 밥은 원래 맛있는 음식이다.
‘요리사들의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는 2018년 국내에서 인터뷰했을 때 피곤할 때면 아무 반찬 없이 흰쌀밥만 먹는다고 했다. 그는 “무미한 듯 순수한 맛이 마치 차가운 물 한잔처럼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며 “잘 지은 쌀밥 한그릇은 절대 단순하지 않은, 엄청나게 정교하고 어려운 요리”라고 예찬했다. 그의 말처럼 밥은 단순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니라 쌀·물·불이 빚어낸 정교한 미식의 결정체다.
그런데 요즘 이 맛있는 밥을 두고 ‘차갑게 식혀 먹어야 살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진다. 이른바 저항성 전분 때문이다. 저항성 전분은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대장까지 내려가 유익균의 먹이가 되며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밥을 차게 식히면 이 성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쌀은 저항성 전분 함량이 낮은 편이다. 전세계 쌀 품종은 크게 인디카(장립종)와 자포니카(단립종)로 나뉜다. 우리가 주로 먹는 국산 쌀은 길이가 짧고 둥근 단립종(자포니카)이다. 단립종은 아밀로스 함량이 적어 찰기가 돌며, 식어도 비교적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외국에서 저항성 전분을 연구할 때 언급되는 쌀은 대부분 길이가 길고 찰기가 없는 장립종이다. 장립종은 아밀로스 비율이 높아 밥을 지을 때 수분이 더 많이 필요하며 식으면 쌀알이 굳어 유난히 딱딱해지는 특성을 지닌다. 즉 애초에 저항성 전분이 잘 생기는 품종은 우리가 먹는 쌀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저항성 전분 함량을 늘리겠다고 찬밥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쌀을 더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콩과 쌀을 함께 먹는 것이다. 쌀은 훌륭한 에너지원이지만 단백질을 구성하는 필수아미노산 중 라이신이 다소 부족하다. 반대로 콩에는 쌀에 부족한 라이신이 풍부하고 쌀에 풍부한 메티오닌이 적게 함유된 편이다. 쌀과 콩을 섞어 밥을 지으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단백질 구성이 완전해진다. 밥에 두부나 콩조림 같은 반찬을 곁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콩은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풍부해 소화가 천천히 이뤄져 같은 밥이라도 혈당이 오르는 속도를 완만하게 해준다.
요즘에는 밥맛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멸종위기를 맞은 토종벼를 복원하려는 흐름도 활발하다.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독립식당에서는 토종쌀로 지은 밥과 계절 재료들로 차려낸 반상이 손님을 맞이한다. 붉은차나락 현미와 삼광미를 혼합해 지은 밥은 차진 식감에 단맛이 깔끔하다. 순무 된장과 어된장을 넣어 끓인 두부 된장국에 제주 옥돔구이와 그날그날 바뀌는 네가지 계절찬이 밥상을 채운다. 밥맛을 음미하며 즐기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 다 먹고 숭늉을 마시면서 저절로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맛있는 밥이라면 백미밥이 아니어도 괜찮겠구나.”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