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 속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연달아 세차례 발생하면서 국내 양돈업계가 새해 벽두부터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ASF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송미령·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따르면 23일 경기 안성시 미양면과 24일 경기 포천시 관인면 돼지농장에서 ASF가 잇달아 발병했다.
26일엔 전남 영광군 홍농읍 돼지농장에서 ASF가 나오면서 전국 양돈업계가 초비상 상태에 빠져들었다. 올들어서 16일 강원 강릉시 강동면에서 발생한 돼지농장 ASF 발생 사례는 10일만에 4건으로 늘어났다.
◆호남 첫 발생…사실상 전국이 뚫렸다=더욱이 전남 사례는 지역 내 첫 발생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지역에서 ASF가 발병한 것은 2019년 9월 병 자체가 국내 첫 유입된 이후 6년 4개월만에 처음이다. 연초부터 강원 1건(강릉), 경기 2건(안성·포천)에 이어 전남마저 방역망이 무너지면서 사실상 전국이 ASF 비상 상황에 빠져들었다.
영광 발생농장 사육규모는 큰 편이다. 사육마릿수는 2만1000마리로 파악됐다. 중수본은 26일 밤부터 초동방역팀을 투입해 농장 내 돼지를 전량 살처분하고 주변 도로를 집중 소독 중이다.
또한 월요일인 26일 밤 8시부터 수요일인 28일 밤 8시까지 48시간 동안 전국 돼지농장·도축장·사료공장 등 축산 관련 종사자와 차량에 대해 ‘일시이동중지명령(Standstill·스탠드스틸)’을 발령했다. 올해 3건 발생 때는 해당 지역과 인접 시·군에 대해서만 스탠스스틸을 내렸다. 새해 들어 전국 양돈농가를 대상으로 이동제한을 시행한 것은 처음이다.
ASF 국내 누적 발병 건수가 곧 60건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됐다는 반갑지 않은 기록도 갖게 됐다. 이달 들어 확인된 ASF 사례 4건은 2019년 9월 이후 56~59번째에 해당한다.
◆동서남북 종잡을 수 없는 ASF 발병 양상=우려할 점은 ASF 발생지역이 ‘전국구’라는 것이다. 강릉과 안성은 직선거리로 176㎞이다. 안성과 포천도 131㎞ 거리에 위치해 있다. 포천과 영광은 286㎞ 떨어져 있다. 강릉·안성·영광이 ASF 청정지역이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포천은 지금껏 ASF 6건(24일 발생 사례 포함)이 발생했다.특히 이번 발생 농가는 2023년 1월 ASF가 확인된 곳으로 3년 만에 재감염되는 아픔을 맛봤다.
살처분 규모또한 크게 늘었다. 강릉·안성·포천 세 농장 내 살처분규모는 모두 3만554마리에 달한다. 여기에 영광 사육마릿수(2만1000마리)를 고려하면 예방적 살처분 처리된 돼지는 5만1000여마리로 껑충 뛰게 된다.
지역간 역학관계가 전혀 없다는 점도 미스터리다. 중수본에 따르면 안성·포천 발생농장은 강릉 양돈농가와 직접적인 역학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마지막 발생사례로 기록된 충남 당진 양돈농가를 포함해 5개 지역 모두 야생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최근 1년간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의아한 대목이다.
김종구 농식품부 차관은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수본 회의에서 “지난해 11월 충남 당진부터 강원 강릉, 경기 안성·포천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네지역 모두 야생멧돼지 검출이 최근 1년간 없었다는 점에서 현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엄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리무중 발생 원인에 외국인 근로자 냉장고까지 탈탈 턴다=정부는 17일 전국 대상으로 발령한 위기 경보를 25일 ‘심각’ 단계로 유지하고 양돈농장에 대한 긴급 소독과 정밀검사, 이동제한 등 방역을 강화했다.
특히 농림축산검역본부·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대한한돈협회 등과 협의를 거쳐 ▲전국 돼지농장 일제 소독 ▲농장 종사자 물품·축산물과 퇴비사 등 일제 환경검사 ▲접경지역 소독·점검 강화 ▲방역실태 점검 ▲예찰·홍보 강화▲발생농장 재입식 절차 강화 6개 조치를 즉시 시행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농장 종사자 물품·축산물 일제 환경검사를 시행한 것을 두고 정부가 전파 원인으로 외국인 노동자로 인한 바이러스 유입에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중수본은 전국 돼지농장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종사자의 신발·의복, 냉장고 내 축산물까지 전부 소독하고 이를 한돈협회 협조를 얻어 참여 인증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논란 소지도 있다. 양돈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주고받는 의류·식품 등이 농장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상당수 양돈장 현실이 외국인 노동자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고용을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보단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배정기준 점수제를 활용하는 등 점진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생멧돼지로 인한 전파 가능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견해도 여전하다. 포천지역의 한 양돈농가는 “야생멧돼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ASF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발생농자에 대해 방역관리 미흡 땐 재입식 신청을 반려한다는데 전파 원인을 농장 내부에 초점을 맞춘다면 농가만 책임을 지는 상황이 된다”고 우려했다.
김보경 기자 brigh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