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성공 농업을 일구는 농업경영 전문지 월간 ‘디지털농업’ 1월호 기사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극심한 폭염과 집중호우, 겨울철 이상고온에 농업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재배 환경이 급변한 가운데 병해충 발생 시기는 앞당겨지고 피해는 커져 작물 생육 기반마저 흔들고 있다. 그 결과 생산비는 늘어나고 수확량은 들쭉날쭉해졌다.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농업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작물 재배 환경 ‘흔들’…대응 품종·기술 개발 급선무
환경부와 기상청이 발간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 따르면 2024년과 2023년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예측과 이상기상에 대한 피해 경감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온은 각각 14.5℃와 13.7℃로 관측 이래 1·2위를 기록했다.
여름철 강수량이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 30년간 극한 강우 발생 횟수도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상기후는 자연재해 발생 위험을 키우며 농업·농촌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균 기온 상승과 강수 패턴의 변화는 농산물 생육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쳐 작물 생산성 저하와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보리·감자 등 밭작물은 기후변화로 수량 감소와 품질 저하가 관측됐으며, 양파와 같은 월동채소는 겨울·봄철 기상 여건에 따라 생산성이 크게 요동치며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졌다.
과수 재배 적지는 점차 북상하며, 시설재배 작물도 품질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피해가 미미했던 병해충도 기온 상승으로 주요 병해충으로 부상하고, 우리 기후에 맞지 않던 외래 잡초와 제초제 저항성 잡초도 출현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피해를 줄이려면 작물 재배 적지 재탐색과 재배 시기 조정,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 불안정과 농산물 품질 저하는 농가의 경영을 압박하며, 농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술 확대와 재배구조 개편 등 농업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따른 농산물 수급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현장 맞춤형 재배 기술의 개발과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나영은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대응과장은 “2027년까지 ‘신농업 기후변화 대응체계 구축사업’을 통해 내재해 품종 개발·보급을 확대하고, 재배지 변동에 따른 작황
사과·복숭아 등 주산지 북상…재배지도 달라져
최근 과수 주산지를 중심으로 저온·고온·우박·집중호우 등 이상기상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재배 면적과 과일 생산량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조량 부족에 따른 착과 불량과 병해충 발생이 늘고 폭염에 의한 햇볕데임(일소) 피해, 겨울철 이상고온에 따른 과수 화상병 발생도 잦아지며 생산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심지어 작물 재배 지도도 바꾸고 있다. 사과·배·복숭아 등 주요 과일의 재배선 북상은 이미 현실이 됐다. 농진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고온화가 지속될 경우 20년 뒤에는 강원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사과 재배가 어려워지고, 60년 후에는 국내에서 사과 재배지가 거의 사라질 전망이라고 한다.
실제로 강원 양구군 해안면 등 접경지에는 남부 지역에서 이주한 사과 농가가 늘고 있다. 15만여㎡(4만 5000여 평) 규모로 사과 농사를 짓는 심정석 씨(71)는 10년 전 경북 청송을 떠나 해안면에 정착했다. 추석용 사과 품종인 <홍로>를 재배하기 위해서다.
홍로는 기온에 따른 품질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심씨는 해발 600여m에 과원을 조성했다. 그는 “사과가 열매를 맺고 속이 차는 시기에 기온이 25℃가 넘으면 당도와 경도가 떨어진다”며 “같은 사과 품종이라도 양구산과 남부 지역 사과의 경매가격이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 경북 봉화, 전북 무주·남원 등 전국을 돌면서 사과 농사를 짓던 최원근 씨(71)도 같은 이유로 11년 전 양구에 정착했다. 그는 “해안면은 서늘하고 일교차가 커 사과의 당도가 높고 품질이 뛰어나다”며 “재배 기술이 뛰어난 전국의 사과 농가들이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근래 복숭아 주산지도 경북 청도에서 강원 원주·춘천으로, 포도는 경북 김천에서 강원 영월로 이동했다. 농진청은 사과 재배지의 경우 2070년대 이후 강원 지역보다 더 북쪽으로 이동하고, 배와 복숭아는 2090년대에 주산지가 강원 지역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전지혜 농진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장은 “기후와 농업 환경 변화로 온대 과수는 줄고, 아열대·열대 과수 재배가 늘고 있다”며 “이런 변화에 대응해 지역 맞춤형 품종 보급으로 사과 생산기반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따뜻해진 날씨는 역설적으로 과수 저온 피해를 키우고 있다. 3월 이상고온으로 꽃이 일찍 핀 뒤 4월 꽃샘추위를 맞으면 수정과 생육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이러한 생산 불확실성 증가는 농가소득과 유통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소비자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기후변화가 키운 재앙…병해충 발생 급증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돌발해충의 유입과 개체 수 증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겨울 기온 상승으로 월동 병해충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피해가 확산되는 추세다. 노린재와 진딧물 종 구성과 분포가 변하고, 열대거세미나방과 같은 아열대·열대 해충의 국내 유입도 관측된다.
이상기상이 잦아지면서 식량작물 병해충 양상도 변하고 있다. 2024년에는 벼멸구가 대발생해 큰 피해를 남겼다. 고온이 지속되면서 벼멸구 탈피 시기가 빨라지고 개체 수가 급증한 탓이다. 외래 해충뿐 아니라 검은밤나방·갈색날개매미충·잎집무늬마름병 등 기존 병해충도 예년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병해충 모니터링과 함께 기후변화에 따른 종 구성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살충제 선별, 병해충 저항성 품종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25년에는 벼 깨씨무늬병 피해가 전국적으로 심각하게 발생했다. 벼 깨씨무늬병은 고온다습하고 양분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병으로, 벼의 잎·줄기·알곡 등에 흑갈색 반점이 생겨 수량과 품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지난해엔 출수기에 긴 장마와 야간 고온, 잦은 강우가 겹치며 피해가 급증했다.
농식품부의 벼 깨씨무늬병 피해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평균 발생 면적은 1만 6000㏊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2월 5일 기준 전국 피해 면적이 4만 9000㏊로 3배 이상 늘었다. 전남(2만 899㏊)과 전북(1만 7028㏊)을 중심으로 피해가 집중됐고, 전국 4만 9305㏊(농가 수 3만 4145가구)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이에 농식품부는 벼 깨씨무늬병을 자연재해로 처음 인정하고, 해당 농가에 농약대·대파대·생계비 등 재난지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처럼 자연재해 수준의 병해가 반복되면서 고온 환경에서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내병성 벼 품종 개발과 병해충 대응 재배 매뉴얼 보급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배추 생산 위기…준고랭지 재배·스마트농업으로 대응
기후변화는 농작물 수급 불안으로 이어지며 물가 상승 등 또 다른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여름 배추 재배의 최후 보루로 불리던 강원 고랭지마저 기후 격변 앞에 흔들리고 있다.
기상청 기후변화시나리오(SSP5-8.5)에 따르면 강원 태백의 연평균 최고 기온은 2021년 14.6℃에서 2091년 20.4℃로 증가할 전망이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2050년 고랭지 배추 재배 적지가 크게 줄고 2090년에는 아예 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온다습한 환경도 무름병·반쪽시듦병·시스트선충 등 병 발생을 부추기고 있다. 전남 해남, 충북 괴산, 경북 영양 등 배추 주산지에서는 지난해 가을장마 등에 따른 고온다습한 기후로 무름병 피해가 잇따랐다.
전남 해남에서 2만 3140㎡(7000평) 규모로 겨울 배추 농사를 짓는 장경철 씨(66)는 “지난해 모종을 심은 이후 잦은 비로 밭의 배추 절반이 말라 죽었다”며 “아예 밭을 갈아 엎어버린 농가가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무름병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강원 태백 매봉산 일대에서는 토양 병해 확산으로 배추 재배를 기피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고랭지 배추 주산지인 이곳에서는 최근 4년간 배추 재배 면적이 절반 이상 줄었고, 더위에 강한 양배추 재배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배추 주산지에서는 노지 스마트농업 도입, 고온내성 배추 품종 개발, 준고랭지 재배 기술 보급 등이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농진청은 강원 정선, 전북 남원 등 준고랭지(해발 400~600m)에서 여름 배추 재배를 확대하는 한편,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기상·토양 모니터링을 활용한 실증 연구를 통해 기후 대응 농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 이진랑 | 사진 농민신문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