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연달아 세차례 발생하면서 국내 양돈업계가 새해 벽두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ASF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송미령·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따르면 23일 경기 안성시 미양면과 24일 경기 포천시 관인면 양돈장에서 ASF가 잇달아 발병했다. 앞서 강원 강릉시 강동면 양돈장에서 16일 발생한 이후 8일 만에 3건으로 늘어났다. 26일 오후 6시 기준 전남 영광에서도 돼지 폐사에 따른 ASF 의심 신고가 접수돼 정밀검사를 진행 중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종잡을 수 없는 ASF 발병 양상=이들 발생사례는 국내 누적 발생건수로는 56∼58건에 해당한다. 국내에서 ASF가 최초 확인된 것은 2019년 9월로, 6년4개월 만에 60건에 육박하게 됐다.
우려할 점은 강릉·안성·포천은 지리적으로 매우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강릉과 안성은 직선거리로 176㎞다. 안성과 포천도 131㎞ 거리에 있다. 강릉·안성이 ASF 청정지역이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포천은 지금껏 ASF가 6건(24일 발생건 포함) 발생한 지역이다. 특히 포천 발생농가는 2023년 1월 ASF가 발생한 곳으로 3년 만에 재감염되는 아픔을 맛봤다. 이들 세농장 내 살처분규모는 모두 3만554마리로 파악됐다. 이 중 3분의 2가 강릉 발생농가에서 사육하는 돼지다.
지역간 역학관계가 전혀 없다는 점도 미스터리다. 중수본에 따르면 안성·포천 발생농장은 강릉 양돈농가와 직접적인 역학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마지막 발생사례로 기록된 충남 당진 양돈농가를 포함해 네지역 모두 야생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최근 1년간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의아한 대목이다.
김종구 농식품부 차관은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수본 회의에서 “지난해 11월 당진부터 강릉, 안성·포천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네지역 모두 야생멧돼지 검출이 최근 1년간 없었다는 점에서 현 상황에 대해 엄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리무중 발생 원인에 외국인 노동자 냉장고까지 탈탈 턴다=정부는 17일 전국 대상으로 발령한 위기경보를 25일 ‘심각’ 단계로 유지하고 양돈장에 대한 긴급 소독과 정밀검사, 이동제한 등 방역을 강화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대한한돈협회 등과 협의를 거쳐 ▲전국 양돈장 일제 소독 ▲농장 종사자 물품·축산물과 퇴비사 등 일제 환경검사 ▲접경지역 소독·점검 강화 ▲방역실태 점검 ▲예찰·홍보 강화 ▲발생농장 재입식 절차 강화 6개 조치를 즉시 시행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농장 종사자 물품·축산물 일제 환경검사 시행을 두고 정부가 전파 원인으로 외국인 노동자로 인한 바이러스 유입에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중수본은 전국 양돈장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종사자의 신발·의복, 냉장고 내 축산물까지 전부 소독하고 이를 한돈협회 협조를 얻어 참여 인증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논란 소지도 있다. 양돈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주고받는 의류·식품 등이 농장에 들어오면서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상당수 양돈장 현실이 외국인 노동자로 돌아가는 상황”이라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보단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배정기준 점수제를 활용하는 등 점진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생멧돼지로 인한 전파 가능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견해도 여전하다. 포천지역의 한 양돈농가는 “야생멧돼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ASF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발생농장에 대해 방역관리 미흡 땐 재입식 신청을 반려한다는데, 전파 원인을 농장 내부에 초점을 맞춘다면 농가만 책임을 지는 상황이 된다”고 우려했다.
김보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