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농업인안전보험의 모호한 약관 규정으로 사망보험금 지급이 거부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농작업 도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농업인의 유족이 NH농협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금 지급 청구를 법원이 기각한 것인데, 주요 판단 근거인 ‘농작업 사고와 사망 효력이 보험 기간 1년 안에 모두 발생해야 한다’는 약관 해석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실종선고를 통한 사망일 확정까지 1년 이상이 걸리는 실종 사망의 경우 애초부터 사망보험금을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여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현장 사망은 보장되고, 실종 사망은 안 된다?
‘1년 안에 사고-사망 발생해야’ 법원 유족급여금 지급청구소송 기각
사건의 발단은 202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업인안전보험(일반 2형, 개인)에 가입돼 있던 충주의 70대 농업인 이 아무개 씨는 고추를 비에 젖지 않게 옮기는 중 하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2022년 10월 법원으로부터 실종선고를 받았다.
고인이 농작업 재해로 사망하자 유족들은 농업인안전보험 계약에 따른 유족급여금 9000만원 지급을 청구했지만, NH농협생명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2023년 10월부터 2년 넘게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올해 1월 9일 서울서부지법 항소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유지하며 유족이 제기한 ‘농작업 사망에 따른 유족급여금 지급 청구’를 기각,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약관(제9조 지급사유) 규정을 둘러싼 해석이다. ‘보험 기간 중 농작업안전재해 또는 농작업안전질병으로 사망한 경우’라는 문구를 두고 재판부가 보험 기간 1년 안에 사고와 사망이 모두 발생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 수년 전부터 제기돼 온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 씨는 보험 기간(2020년 3월 18일~2021년 3월 18일)에 사고를 당했지만, 실종선고에 따른 사망 효력은 보험 만료 후 1년 6개월이 지난 2022년 10월에 발생했다. 법원 판단은 보험 기간 중에 농작업 안전 재해를 입었더라도 보험 기간 종료 후 발생한 사망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농업인 재해 안전망 강화’를 위해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정책보험의 목적에 배치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과 같은 실종 사망의 경우 법원의 실종선고를 통해 사망일이 확정되기까지 최소 1년(특별실종 1년, 일반실종 5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농업인안전보험에서 애초부터 사망보험금 지급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 구조라는 점이 드러났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태풍·호우 피해를 입었더라도 ‘현장에서 발견돼 사망 처리된 사람’(일반사망)과 ‘실종된 사람’(인정사망) 간에 보상 여부가 갈리는 셈이다.
유족 소송대리인인 한민옥 변호사(법무법인 논현)는 “실종으로 인한 사망 간주 역시 보험 기간 내 발생해야 한다고 본다면, 농업인안전보험에 가입한 모든 가입자는 태풍 등 위난에 의한 실종 발생 시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근거법인 농어업인안전보험법에는 농작업 중 ‘실종’과 ‘사망’을 차별하는 규정이 없음에도 두 사례를 달리 취급하는 결론으로 이어져 민법 취지에도 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또 “보험 기간이 1년으로 설계돼 있는 상황에서 특별실종의 경우 보험 기간 내 사망 간주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인 만큼 보험 기간 내 실종이라는 사건만 발생하면 실종선고에 따른 사망 간주 효력은 보험 기간과 무관하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되풀이되는 모호한 약관 해석 논란, 대책은
“다의적 해석 가능할 땐 계약자에 유리하게 적용해야”
이번 판결은 1년이라는 단기 보험 구조에서 약관 규정을 보험 기간 내 사고와 사망 모두 발생해야 한다고 본 자의적 해석이 빚어낸 결과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제9조 약관 규정이 ‘보험기간 중 (발생한) 재해나 질병’으로도 충분히 해석될 수 있으며, 이처럼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경우 약관규제법에 따라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역시 “해당 약관이 재해사고 및 사망이 반드시 보험 기간 중에 모두 발생해야 된다고 명백하게 해석하기 어렵다”며 “보험 기간 중 재해 사고가 발생한 이상 보험 만기 이후에 사망하더라도 보험금 지급에 영향이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제의 약관이 NH농협생명의 ‘산재근로자용 농업인안전보험’ 재해사망보험금 약관보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도마에 오른다. 해당 약관은 ‘보험 기간 중 재해가 발생하고, 그 재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험기간 중 사망한 경우’로 명시돼 있는데, 두 문구가 분명히 다른 데도 동일한 해석이 적용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농업인안전보험의 모호한 약관과 이에 따른 사망보험금 거부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2019년 경북 봉화의 농업인이 경운기 전복 사고를 당해 40일 만에 사망했음에도 사망일자가 보험 만료 이후라는 이유로 유족급여금과 장례비 지급을 거부한 사례<본보 2020년 5월 1일자 1면 보도 참조>가 보도된 이후 유사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사업주관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부터 ‘농업작업재해 사망보험금 연장적용특약’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보험 기간 내 발생한 사고로 사망한 경우 보험 기간 종료 후 60일까지 유족급여(사망보험금)를 지급하고 있다.
김정욱 농식품부 농업정책보험과장은 “연장적용특약은 주계약에 포함돼 별도 비용이나 가입 절차 없이 농업인안전보험 가입 시 자동 적용된다”며 “실종사망처럼 사망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대책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현장 사망이든 실종 사망이든 형평성에 맞게 동일한 사망보험금이 지급돼야 한다”며 “또 보험사가 단기보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장기보험의 약관을 준용하면서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약관 보완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