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두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사실상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양돈업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ASF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송미령·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따르면 올들어 28일 오후 2시 기준 ASF 발생지역은 모두 4곳이다. 16일 강원 강릉시 강동면에 이어 23일 경기 안성시 미양면, 24일 경기 포천시 관인면, 26일 전남 영광군 홍농읍에서 차례로 발병했다. 단 열흘 만에 ASF 발생건수가 지난해 전체 발생건수(6건)의 절반 이상을 넘어섰다. ASF 국내 누적 발생건수는 59건이 됐다.
특히 전남은 ASF가 국내 처음 확인된 2019년 9월 이후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이다. 직전 발생농가 소재지인 포천시 관인면과는 직선거리로 286㎞ 떨어졌다는 점에서 발생 원인에 극도의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중수본에 따르면 포천을 제외하면 강릉·안성·영광 모두 농장 발생은 물론 야생멧돼지 바이러스 검출도 없었다.
지역농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재곤 대한한돈협회 전남도협의회장은 “영광 발생농장은 바닷가 옆에 있어 야생멧돼지가 서식할 만한 산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더욱이 해당 농장은 종돈장으로 방역시설도 잘 갖춰진 곳이라 지역농가들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발을 굴렀다.
발생농가는 전남 해남을 비롯해 전북 고창·김제에서 씨돼지를 포함해 모두 8만여마리를 사육하는 초대형 농가인 것으로 전해졌다.
발생시기가 설 대목이 개시되는 때라는 점도 우려스럽다. 농식품부는 27일 “영광 ASF 발생으로 살처분된 돼지는 2만1000여마리로 전체 사육마릿수(1195만6000마리)의 0.18% 이하 수준”이라면서 “국내 돼지고기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 얘기는 다르다. 한돈협회 등에 따르면 설(2월17일)에 맞춰 제수용·선물용 돼지고기를 시장에 출하하려면 1월말과 2월초 도축·가공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강릉·안성·포천 ASF 발생농장과 역학관계로 묶인 농장은 모두 240여곳이고, 영광 발생농장과 관련 있는 도축장과 출하농가를 포함하면 출하중단분은 전체 출하량의 10%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며 “출하량이 5%만 줄어도 시장에선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오를 소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영광 발생농장 방역대(반경 10㎞·방역지역) 안에 돼지농장 6곳이 몰려 있고, 이들이 전체 2만6000여마리를 사육 중인 점도 불안 요소다.
전문가들은 ASF 방역체계를 전면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돼지수의사회는 27일 성명을 내고 “야생멧돼지를 통한 환경오염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ASF 농장 발생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사육돼지는 농식품부가, 야생멧돼지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관리하는 ‘반쪽짜리 방역체계’를 즉각 통합하고 일원화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방역 선진국들은 ASF 발생 즉시 수의·검역 당국 중심의 강력한 통합 지휘체계를 가동해 조기 종식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출하지연에 따른 농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돈협회는 같은 날 성명에서 “확산 방지를 위한 강도 높은 방역조치는 불가피하나 과도한 이동제한, 출하지연으로 인해 선의의 농가가 불의의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직접 또는 국제택배를 통해 반입되는 축산물·음식 등에 대한 국경검역과 국내 야생멧돼지 개체수 저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어설명] 아프리카돼지열병(ASF)
‘African Swine Fever’ 약자로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치료제가 없어 급성형에 감염되면 치사율 100%에 달할 만큼 돼지엔 치명적이다.
김보경 기자 brigh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