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홍란 기자]
지난해 봄철 발생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틀이 마련됐지만, 피해 주민들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29일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시행됐으나, 정작 핵심인 보상 기준이 구체화되지 않으면서 산불 발생 이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피해 회복의 윤곽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시행령 시행 이후 피해 회복의 성패는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달렸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불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무총리 소속의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는 피해 지원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피해 지원 신청은 시행령 시행일로부터 1년간 가능하며, 시·군의 1차 검토와 도의 2차 확인을 거쳐 재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지원 여부와 지원금 규모가 최종 결정된다.
시행령에는 피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업장 건축물·장비 복구비와 폐기물 처리비 지원이 담겼다. 농·임·어업 피해의 경우 농기계를 포함한 시설·장비 복구는 물론 작물 피해와 산불로 인한 수목 생육 저하까지 지원 범위에 포함됐다. 이와 함께 생활 안정과 의료 지원, 지역 경제 활성화, 산림 재건 등 전반적인 회복을 위한 지원 항목도 명시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상황은 다르다. 피해 주민들이 줄곧 요구해 온 ‘구체화된 보상 기준’이 시행령에서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시행령에 위임된 만큼 피해 주민들은 시행령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번에도 주요 판단 권한이 재건위원회로 넘어가면서 “또다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고태령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그동안 일상 회복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어 상황을 제대로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며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다시 현실을 마주하니 오히려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흐르는 사이 아픔은 일상이 됐지만, 보상은 여전히 먼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현장의 어려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 사무국장은 “경북도가 4월 30일까지 피해지원 집중 신청 기간을 운영하고, 1차 보상이 8월쯤 이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융 정책도 마땅치 않고, 특히 농민들은 소득이 없는 것으로 산정돼 대출조차 쉽지 않다. 올해 농사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농사를 짓지 못한 데 이어 올해마저 영농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피해 주민들이 기대를 거는 것은 시행령에 담긴 ‘피해자 단체 의견 제출’ 조항이다. 피해자 10명 이상이 구성한 단체가 재건위원회 심의 안건에 직접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고 사무국장은 “지금으로서는 이 조항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며 “주민 의견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체감할 수 있는 피해 지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재건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회 산불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미애 더불어민주당(비례) 의원은 “특위 활동 기간을 연장한 만큼 재건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지고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홍란 기자 hongr@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