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국내 양돈산업이 생사 기로에 섰다. 치료제·예방백신도 없고 치사율 100%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다. 올들어 ASF는 9일 오후 7시 기준 10건에 달해 지난해 전체 사례(7건)를 훌쩍 넘어섰다. 문제는 발생 양상이 널뛰기라는 점이다. ASF 바이러스는 새해 1월 이후 지금까지 강원·경기·전북·전남·경남 등 5개도를 유린 중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 ASF의 발생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농민신문’이 전문가 긴급 서면 좌담회를 연 이유다.
- 올들어 ASF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이유는.
▶엄길운=최근 ASF 발생은 단일 원인보단 여러 구조적 요인이 누적된 결과로 보인다. 우선 야생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은 상태로 환경 내에서 순환해왔을 것이다. 이는 멧돼지 신고에 대한 보상금이 없어져 발견 건수가 현저히 줄어든 측면이 작용했다고 본다. 또 야생멧돼지와 사육돼지를 각각 다른 정부부처에서 관리하는 분절된 방역 구조도 한몫했다.
사람·차량·물품을 통해 인적 전파 위험도 누적됐을 것이다. 일상적 농장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방역 공백이 지역간 비연속적 발생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현재로선 ASF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로 유입됐는지, 해외 유입 여부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김정주=발생 원인 파악을 위해 농림축산검역본부 역학조사반이 올해 모든 발생농장에 파견돼 조사 후 분석 중이다. 다만 전남 영광, 전북 고창을 제외한 발생농장간 인적·물적 역학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산발적으로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올들어 3·8번째 발생농장인 경기 포천 양돈장 두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화성·나주 사례 제외)은 바이러스 유전형이 해외에서 유행하는 ‘IGR-Ⅰ’형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외국인을 포함한 농장 종사자가 국내 행사나 주기적 모임 등을 통한 교류 과정에서 반입된 해외 불법 오염 축산물(돼지 육포, 수육 등)이 공유돼 농장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발생농장 인근 쓰레기매립장·음식물처리장·산업단지에서 ASF 오염원이 농장 인근에 유입돼 야생동물·차량을 통해 전파되는 사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 농가 애로사항과 우려점은.
▶이기홍=설 명절을 앞둔 시점에 전국 이동제한 농가가 2000여곳까지 늘어 현장 부담이 커진 상태다. 이로 인해 출하적체, 위생시험소 검사역량 초과, 현장 채혈 인력 부족 등 방역 절차의 병목이 발생했다. 출하과정에서도 ‘1일 1차량 원칙’에 따른 차량 부족난이 심각하다. 대한한돈협회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통해 조건부 조기출하, 출하차량 1일 다회 방문 허용 등으로 규제를 유연하게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김시훈=국가 먹거리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ASF는 전염력이 강해 방역 실패 때 대규모 양돈장 감염이 불가피하다. 돼지고기 국내 수급에 차질을 빚고 수출이 제한될 수 있다.
- ASF 확산세를 억제할 방안은.
▶김정주=ASF가 단기간 내 전국적으로 산발 발생함에 따라 추가 확산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역조치를 강화할 예정이다. 전국 150개 종돈장을 대상으로 폐사체 검사를 우선하고 일반 양돈장도 단계적으로 검사한다. 폐사체가 없는 곳은 의심 개체를 중심으로 채혈검사에 돌입한다. 종돈 운반차량에 대한 환경검사도 시행한다.
이와 함께 도축장에서 진행하는 돼지열병(CSF) 예찰검사 시료를 활용해 ASF 항원검사를 병행 추진한다. 또한 ASF 검사기관으로 민간기관을 포함할 계획이다. 검사 역량과 물량 비중을 고려해 민간기관 한곳부터 우선 시행하고 참여 희망업체를 받아 수행 주체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참여업체는 검역본부 주관의 숙련도 검사와 책임검사자 지정·관리, 교육·점검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엄길운=살처분과 이동제한만으로는 전국 확산을 통제하기 어렵다. 농장단위 차단방역을 최우선으로 삼아 방역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현재로선 농장 내 바이러스 유입을 막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다. 시설보단 사람의 행동과 실제 운영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입지·구조와 주변 환경에 따라 농장마다 취약점이 다르므로 지역 권역화를 기반으로 지역·농장 맞춤형 방역이 필요하다. 아울러 농장과 가까이 있는 수의사가 상시 예찰과 교육, 초동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민관 협력 방역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조호성=먼저 의심 증상을 보이면 신속히 신고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ASF 바이러스 잠복기가 최대 21일임을 고려해 발생농장과 역학 관련 농장의 예찰과 모니터링 강화가 필수적이다. 농가에선 돼지 건강상태를 세심히 관찰하고 의심 증상을 보이면 신속히 신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ASF 바이러스는 6개월까지도 감염성이 유지된다. 해외 유입 불법 축산물, 특히 가열하지 않은 햄·소시지 등 가공품 반입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 각자 처지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시훈=구제역 백신처럼 ASF 백신이 상용화되면 피해규모를 줄이고 축산농가 경영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ASF 백신 개발에 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엄길운=농가에 ‘차단방역은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부는 규제와 처벌 중심 방역에서 벗어나 현장을 신뢰하고 지원하는 방역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돼지수의사회에서도 방역 최전선에서 과학과 경험에 기반한 차단방역에 책임을 다할 것이다.
▶이기홍=한돈협회는 농가 스스로 ‘방역의 최전선에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자율 차단방역 실천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겠다. 또한 검사·출하·이동제한 등 방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장 애로를 신속히 발굴해 제도개선으로 연결하는 역할에 집중하겠다.
▶조호성=ASF 방역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양돈농가·방역당국·한돈협회·수의과대학 등 관련 기관이 더욱 똘똘 뭉쳐야 할 때다. 지금은 ASF 방역에 집중해야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양돈장 차단방역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김보경 기자 brigh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