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2월호 기사입니다.
커피의 맛과 향을 음미하고 싶지만, 카페인 부작용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맛있는 디카페인 커피는 반가운 대안이다. 일반 커피에 뒤지지 않는 풍미를 갖춘 디카페인 커피 전문점,대구의 ‘디보트커피’를 가봤다
카페인 약자를 위한 배려 한 잔
동대구역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한적한 동네에 디카페인 전문 카페 ‘디보트커피’가 자리한다. 16년 차 바리스타 성연자 대표(44)가 10년 전 이곳의 문을 열었다. 임신이나 체질, 건강상의 이유로 카페인을 꺼리는 이들도 마음 편히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모던한 화이트 톤의 공간에는 초록 식물이 곳곳에 놓여 있고,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부드러운 온기를 더한다.
성 대표는 과테말라·콜롬비아산 등 스페셜티 원두를 사용해 직접 로스팅한다. 매일 샷 테이스팅(시음)을 거쳐, 누가 내려도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세심히 관리한다.
맛있는 디카페인을 위하여
성 대표는 과거에 컴퓨터 프로그램 교육 실장으로 일했다. 직업은 안정적이고 복지와 보수도 만족스러웠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를 접했다.
“아주 가끔 마시던 인스턴트커피보다 원두로 내린 게 카페인 부작용이 훨씬 덜하더라고요. 같은 커피인데 왜 다른지 궁금했어요.”
새로운 시도와 배움을 좋아하던 그는 2010년부터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바리스타 양성과정을 이수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커피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4~5년간 현장 경험을 쌓아 슈퍼바이저(관리자)까지 올랐고, 해외 커피 시장을 배우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미국 뉴욕으로 가 유명 카페와 박람회도 여러 번 찾았다. 그곳에서 ‘맛있는’ 디카페인 커피를 만났다.
‘스위스 워터 공법’으로 만든 스페셜티 디카페인 커피를 맛본 순간, 디카페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카페인 제거 공정에서 향미·성분이 손실돼 맛이 떨어질 거라는 인식과 달리, 산미와 보디감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임신과 수유로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뉴욕에서 맛봤던 디카페인 커피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고,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디보트커피다. 그는 생두 선별부터 로스팅·분쇄·추출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디카페인 커피 제작에 중요한 게 원재료의 품질과 생두 처리 과정이에요. 저는 스위스 워터 공법, 마운틴 워터 공법으로 카페인을 제거한 생두를 사용해요. 물로 카페인을 대부분 없애면서도 향미 손실을 최소화하고 깊은 풍미를 유지하는 방식이에요.”
생두는 과테말라산을 주로 쓰고, 콜롬비아산도 함께 활용한다. 성 대표는 각 생두의 특성을 파악해 고유한 성분이나 향·맛이 잘 표현되도록 로스팅 포인트를 세밀하게 조정한다. 디카페인 로스팅은 특히 까다롭다. 생두 처리 과정에서 다공성 구조가 생겨 열반응에 민감해지고, 가스 배출 속도와 수분율이 일반 생두와 달라 추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화력이 조금만 달라져도 향이 변질될 수 있다.
원두 색 변화도 뚜렷하지 않아 소리와 시간으로 상태를 판단한다. 예컨대 원두가 익으며 팽창하는 1차 크랙 소리가 일반 생두의 경쾌한 ‘파바박’ 소리와 달리 둔탁하게 들린다. 그는 매번 로스팅 일지를 작성하며 산지별 생두에 따른 최적의 온도·시간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원두로 내린 커피는 다크초콜릿 같은 깊은 단맛과 구운 견과류의 고소함, 묵직한 보디감이 어우러진다. 카페인이 제거됐음에도 향미의 밀도가 일반 원두 커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노력은 성과로도 이어졌다. 성 대표는 2024 대구커피챔피언십 로스팅 워시드부문 심사위원상&파이널리스트상, 2025 대구커피챔피언십 마노브루잉 파이널리스트상 등을 받았다. 또, 대구 ‘앞산커피축제’를 비롯한 각종 커피 박람회·축제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행사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시음으로 선보이며 ‘디카페인은 맛없다’는 선입견을 깨려고 해요. 한 모금만 마셔도 맛있는 디카페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요.”
어디서든 커피를 즐기는 행복
디보트커피의 모든 메뉴는 디카페인과 일반 원두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성 대표는 특히 원두의 향미를 가장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핸드드립, 우유와의 조화가 훌륭한 카페라테, 저온에서 장시간 추출해 부드러운 맛을 살린 콜드브루를 추천했다.
토마토주스·밀크티·레모네이드 등 논 커피 메뉴도 갖춰져 있다. 그중 허니자몽티는 인기 메뉴로 꼽힌다. 자몽 반개를 직접 짜 넣고, 나머지는 꿀에 절여 토핑으로 올려 상큼함과 달콤함을 함께 살렸다. 에이드와 티에 활용하기 위해 계절마다 수제 청을 담근다.
디저트 역시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 쌀 쿠키, 치즈케이크, 티라미수 등 구성이 다양하며, 일부 메뉴는 때에 따라 바뀌고 있다. 겨울에는 제철 딸기를 듬뿍 올린 딸기 케이크가 인기다.
디카페인 원두로 만든 드립백과 콜드브루 원액 파우치도 개발해 매장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한다. 제품에는 어디서든 고품질의 커피를 맛보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맛있어서 찾는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로스팅 기계 앞에 선다.
[1분 커피 상식!] 디카페인 커피의 기준과 역사
디카페인이라고 해서 카페인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카페인을 90% 이상 제거한 경우에 ‘디카페인(탈카페인) 제품’으로 표기할 수 있다. 디카페인 커피의 역사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상인 루트비히 로젤리우스는 아버지가 과도한 커피 섭취로 건강을 잃었다고 믿고 카페인을 제거한 커피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그는 ‘벤젠’을 용매로 사용해 카페인을 제거하는 공정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디카페인 커피의 출발점이다. 이후 벤젠이 발암물질로 밝혀지면서 이 방식은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물과 활성탄 필터를 활용한 ‘스위스 워터 공법’, 멕시코산 천연 암반수와 활성탄 필터를 활용한 ‘마운틴 워터 공법’ 등을 사용한다.
글 김민선 기자 I 사진 고승범(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