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성공 농업을 일구는 농업경영 전문지 월간 ‘디지털농업’ 2월호 기사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해충의 생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농작물 피해를 키우고 있다. 기후변화로 겨울 기온이 높아지면서 해충의 월동 생존율이 상승하고, 개체 수 증가와 함께 활동 시기와 서식 가능 지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해충 관리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초기 예찰과 신속한 방제, 체계적인 환경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기상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24년까지 113년 동안 국내 연평균 기온은 2.8℃ 상승했다. 특히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는 양상이 뚜렷하다. 겨울(일평균 기온이 5℃ 미만으로 내려간 뒤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부터 끝날)은 과거 30년(1912~1940년) 평균 109일에서 최근 30년(1995~2024년) 평균 87일로 22일이나 줄었다.
과거에는 겨울철 기온 하강과 지속적인 토양 결빙이 곤충과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자연 방역장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겨울철 최저 기온이 평균 기온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영하 10℃ 이하의 극저온 발생일수는 1980년대 평균 14.2일에서 최근 10년 평균 5.1일로 크게 감소했다.
최저 기온 상승은 토양 동결 깊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토양 동결 깊이는 월동 곤충과 병원균 포자, 식물 뿌리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국립기상과학원 토양 관측 자료에 따르면 중부 내륙 지역의 겨울철 최대 동결 깊이는 1990년대 평균 32~38㎝에서 최근 10년 18~24㎝ 수준으로 얕아졌다.
이처럼 겨울철 기온 상승으로 해충 발생 위험이 높아지면서 농가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충 발생 양상을 연구하는 김광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산물안전성부 연구사는 “겨울철 기온 상승은 월동해충의 생존율을 높여 증식 밀도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과거보다 농작물 피해를 확대한다”며 “기존에 없던 병해충이 나타나거나 월동해충의 부화와 활동 시기가 앞당겨지고 분포 범위가 넓어지는 현상도 관찰된다”고 밝혔다.
월동처 관리·예찰 통한 조기 대응 중요
과거에는 며칠씩 이어지는 강추위가 해충의 월동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추위의 강도와 지속 기간이 모두 약화하면서 월동에 성공하는 해충 수가 크게 늘고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애멸구와 벼멸구는 영하 7℃에서 72시간 연속 노출되면 생존율이 15% 미만으로 떨어지지만, 같은 온도에서 24시간 노출될 때 생존율은 48%에 달한다. 이는 병해충의 생물 활동을 물리적으로 억제하던 임계 조건이 기후변화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겨울 기온이 평년보다 높으면 먹노린재·애멸구·벼물바구미가 증가해 봄철 맥류와 벼 등에 피해를 준다. 최근 들어 월동한 먹노린재가 급증하면서 전남 순천·여수·영암 등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피해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로 노지 월동해충은 물론 시설원예 작물의 병해충 위험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월동하는 병해충의 알과 월동처를 제거하고, 예찰을 통해 초기 발생을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지난해 겨울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경기 지역 친환경 토마토 농가를 중심으로 토마토뿔나방 피해가 확산했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가 지난해 1월 자체 조사한 결과, 경기 광주와 파주 지역의 친환경 농가에서 토마토뿔나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는 경기도농업기술원이 밝힌 2024년 토마토뿔나방 첫 발생 시기인 3월보다 두 달 빠른 것이다.
토마토뿔나방은 2023년 제주에서 처음 확인된 외래 검역 해충으로, 번식력이 강하고 잎과 줄기 등을 갉아 먹어 피해를 준다. 생육 적정 온도는 14~35℃지만 애벌레·번데기·어른벌레의 절반가량은 0℃에서도 생존할 수 있어 전국적인 월동 가능성이 제기된다.
4630㎡(1400평) 규모로 친환경 토마토 농사를 짓는 이호동 씨(45·경기 광주)는 “지난해 1월 중순 아주심기 이후 토마토뿔나방이 급속하게 번졌다”며 “퇴촌면 정지2리 토마토작목반 소속 20여 농가 가운데 친환경 농가는 물론 관행 농가에서도 대부분 발생했다”고 말했다.
토마토뿔나방은 발생 전 관리와 조기 대응이 핵심이다. 육묘 단계에서 방충망을 철저히 설치하고, 피해 잎이 발견되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 비티제 등 유기농업 자재를 초기 단계에 살포하는 것도 발생 억제에 효과적이다. 정부 역시 월동 여부 조사와 함께 토마토뿔나방 실태 파악과 방제 기술 개발에 나섰다.
농진청은 2025년부터 ‘고위험 토마토뿔나방의 생물적 특성 구명 및 방제 기술 개발’ 연구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토마토뿔나방 발생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중점 발생 지역에는 트랩캠(페로몬트랩에 카메라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발생 상황을 촬영하는 장치)을 장착한 성페로몬트랩을 설치해 발생 유무와 발생 최성기, 개체 수 밀도를 관측하고 있다.
과수 병해충, 월동난 제거·부화 차단해 밀도 낮춰
과수 월동기 병해충 관리는 사전 방제와 친환경 약제 활용, 병해충 조기 진단이 핵심이다. 최영민 전북도농업기술원 원예과 농업연구사는 “기후 변동성 확대로 과수 생육기가 앞당겨지면서 사과와 배 과원에서 월동하는 주경배나무이와 응애류, 갈색무늬병 등 각종 병해충 피해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월동 전 해충 밀도를 낮추고, 알집을 제거해 부화를 차단하는 것이 방제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배와 사과 과원에서는 수확 후 낙엽 전 방제와 함께 낙엽 후 병든 열매, 낙엽, 봉지 잔재물 등을 제거해 병해충 잠복처를 없애야 한다. 노지 과수원에는 이른 봄 주경배나무이(꼬마배나무이)·응애류(점박이응애·사과응애)·삼식나방류(복숭아삼식나방·사과삼식나방)·깍지벌레류 같은 월동해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지치기할 때 이를 제거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2~3월 가지치기할 때 가지에 붙어 있는 월동해충의 알집이나 번데기를 제거해 파쇄하거나 소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겨울 온난화는 주경배나무이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경배나무이는 겨울 동안 배나무의 거친 껍질 속에서 무리 지어 월동하며, 낮 기온이 6℃ 이상으로 오르면 활동한다.
알은 주로 가지 틈새에 자리해 방제가 어렵고, 부화한 애벌레는 잎이 빽빽한 엽총(잎이 뭉쳐난 부분)과 화총(꽃이 뭉쳐난 부분)에 서식한다. 이에 따라 효과적인 방제를 위해서는 산란 전에 나무 위로 이동한 어른벌레를 집중적으로 방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돌발해충, 부화 전 예찰·천적 방제가 해법
최근 10년간 온난화로 갈색날개매미충·꽃매미·미국선녀벌레 등 외래 돌발해충의 발생 시기가 앞당겨지고 밀도가 증가하는 추세다. 서미자 국립농업과학원 농산물안전성부 연구사는 “돌발해충은 번식력이 강해 부화 전에 예찰과 방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며 “정확한 발생 예측과 천적을 활용한 친환경 방제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천적 곤충을 활용해 돌발해충을 방제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국립농업과학원 해충잡초방제과는 갈색날개매미충의 토착 천적인 ‘날개매미충알벌’과 미국선녀벌레의 도입 천적인 ‘선녀벌레집게벌’, 꽃매미 천적인 ‘꽃매미벼룩좀벌’을 방제에 활용하기 위한 이용 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농진청에 따르면 미국선녀벌레의 천적 선녀벌레집게벌를 대량 증식하는 데 성공해 지난해 1만 4264마리를 생산했다. 2024년까지 5년간 전국 29개 지역에 선녀벌레집게벌을 방사한 결과, 최대 30% 이상의 기생률을 보이며 방제 효과를 입증했다.
갈색날개매미충 역시 천적인 날개매미충알벌을 활용한 방제 가능성이 열렸다. 서 연구사는 “날개매미충알벌은 월동이 가능하고 최대 54.3%의 높은 기생률을 보여 방제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며 “부화 시기 예측과 함께 저독성 방제제를 선발해 천적과 혼용할 수 있는 방제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시대에 농업 현장은 월동해충 관리에서 돌발해충 대응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방제체계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기온·강수·생육 데이터와 해충 발생 정보를 결합한 인공지능(AI) 기반 병해충 예측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농진청은 앞으로 ‘AI 기반 농작물 주요 병해충 발생 월간 전망 기술 개발 연구’를 통해 더욱 정밀한 병해충 예측 정보를 농가에 실시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이진랑 | 사진 농민신문사 DB·국립농업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