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두고 가축전염병이 동시에 터지니 스트레스로 2∼3일 만에 체중이 3㎏ 빠진 농가도 있어요.”
24일 경기 포천축협(조합장 양기원)에서 만난 엄지섭 상임이사는 최근 설 명절 분위기를 두고 ‘초상집 같았다’고 표현했다. 포천은 올겨울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동시에 발생한 곳 중 하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두 가축전염병이 동시에 발병한 시·군은 25일 오전 10시 기준 8곳이다.
포천 양돈장 2곳은 1월24일에 이어 이달 6일 ASF가 연이어 발생했다. 명절 전날인 16일엔 산란계 38만여마리를 사육하는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병했다. 포천에서 ASF가 발생한 것은 2023년 4월 이후 2년9개월 만이다. 고병원성 AI는 2021년 2월 이후 5년 만이다.
더욱이 포천은 전국에서 산란계 사육마릿수가 가장 많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4분기(12월1일 기준) 가축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산란계(8269만1829마리) 가운데 7.2%(592만3890마리)가 이곳에서 사육된다. 실제로 포천시내 곳곳에선 ‘축산농장 방문 자제’를 강조한 펼침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시청 건물 디지털 전광판에는 ASF의 심각성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반복 재생됐다.
엄 이사는 “우리지역은 2010∼2011년 구제역 사태로 홍역을 치렀던 터라 축산농가 사이에선 ‘방역에는 양보가 없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는데 명절을 코앞에 두고 두 전염병이 쌍으로 발생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발생농가는 살처분 보상금이 삭감되고 재입식까지 6개월∼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대출금 상환 등 부담은 계속된다. 엄 이사는 “축협은 농가 재기를 돕고자 금융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설 대목을 사실상 망쳤다는 호소도 나왔다. ASF 발생농장 방역지역(반경 10㎞·방역대) 안에 양돈장 2곳을 뒀다는 최영길 대한한돈협회 수석부회장은 “일시이동중지명령이 내려져 농가들이 제때 출하하지 못했다”며 “발생지역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한 특단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농업기술센터 내 차려진 가축전염병 특별방역대책본부 상황실에서 만난 최윤희 시 축산과장은 “설 연휴 기간 군부대에서 ASF 방역 살수작업을 지원해줘 시름을 덜었다 싶었는데 산란계농장에서 고병원성 AI 의심 신고가 들어와 너무나 허탈했다”고 말했다.
살처분 현장 담당자 고충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시 축산과 한 직원은 “돼지를 대형 탱크에 넣어 호기·호열성 미생물을 이용해 살처분하는데 돼지 울음과 발버둥치는 소리가 꼭 천둥 같다”면서 “소리가 멎을 때면 그제야 돼지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돼 괴롭다”고 토로했다.
살처분규모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농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것도 특이점이었다.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해 9월 내놓은 올 동절기 가축전염병 특별방역대책을 통해 그간 고병원성 AI 발생농장에서 반경 500m 안에 있는 모든 농장을 대상으로 일괄 예방적 살처분하던 것을 위험도 평가를 통해 살처분 여부를 조정하기로 했다. 축산물 수급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포천에선 고병원성 AI가 발생하자 예방적 살처분 진행 여부를 두고 당국과 농민 간 실랑이가 오가다가 결과적으로 종전처럼 해당지역 모든 농장을 대상으로 살처분이 이뤄졌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산란계농가는 “반경 500m 이내는 농장간 수평 전파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구간”이라면서 “위험도 평가 결과에 따라 살처분을 결정하기보다 종전처럼 인접 농장의 전개체를 대상으로 일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포천=이미쁨 기자 alread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