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제 효과가 기준치에 미달한 농약 5개 품목 16개 제품에 대해 ‘벼(벼멸구) 대상 적용’을 전격 삭제토록 했다. 벼(벼멸구) 대상 적용을 삭제한다는 말은 농약제품 라벨지에 쓰인 적용 대상에서 해당 문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농약 등록 취소와는 다르다.
그간 농약제품이 일부 병해충에 내성이 생겨 해당 제조업체에서 자진해 대상 적용을 삭제하는 사례는 왕왕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업체에 일괄적으로 대상 적용 삭제를 지시하고 유통 중인 제품을 전량 회수토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업계는 정부의 이례적 강경 조치에 당혹해 했고 이미 판매된 제품 회수가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 행정명령 내용은=농촌진흥청은 24일 시중 유통약제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결과 방제 효과 기준치에 미달하는 5개 농약 품목에 대해 벼(벼멸구) 대상 적용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5개 품목은 ▲카보설판 입제(3%) ▲클로란트라닐리프롤·티아클로프리드 액상수화제(10.7%) ▲플로니카미드 입상수용제(50%) ▲플로니카미드 입상수화제(10%) ▲플루벤디아마이드·티아클로프리드 액상수화제(20%)다.
농진청은 지난해 12월 등록된 벼멸구 전체 방제약제 64개 품목 171개 제품을 대상으로 실내 시험을 했다. 이후 재평가가 필요한 10개 품목에 대한 포장시험을 시행해 5개 품목 16개 제품이 ‘농약관리법’에 따른 방제 효과 기준치에 미달한 것으로 확인했다.
농진청은 6일 전국 시도와 한국작물보호협회·전국작물보호제유통협회 등 유관기관에 벼멸구 적용 대상 삭제 품목을 알리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농진청 관계자는 “해당 품목 보유회사가 적용 대상을 자진 취하하고 5월31일까지 유통되고 있는 모든 제품을 전량 회수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농진청이 이례적인 농약 전수조사에 이어 특정 병해충에 효과적이라는 말을 쓸 수 없게 한 것은 2024년 벼멸구로 인한 대규모 피해와 농업현장의 민원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벼멸구 피해면적은 3만4140㏊로 집계됐다. 특히 9월 중순까지 이어진 폭염에 따라 벼멸구 방제에 실패하면서 정부는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다.
◆이례적 조치에 업계 ‘당혹’=업계는 당혹감을 피력했다. 약효 재검증 결과에 따라 시중 유통물량 전부를 회수토록 하는 조치는 최초여서다. 업계에선 회수 기한과 방식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농약 등록 자체가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 라벨지의 적용 대상에서 벼멸구만 삭제되는 것”이라면서 “해당 품목 제품을 전량 회수하고 재포장해야 해 추가 인건비와 물류비 부담이 상당하고, 회수가 진행되는 동안 판매가 중단되면서 매출 손실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벼멸구같이 중국·베트남 등에서 날아오는 해충은 해당 지역에서의 과다한 약제 사용 영향으로 저항성이 빠르게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재검사가 이뤄진다면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공동 시험을 진행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환불은 어떻게=업계는 농가가 이미 구매한 제품은 환불해주기로 했다. 업체 관계자는 “농가가 판매처에 환불을 요청하면 농가는 제품 대금을 즉시 돌려받고, 제조사는 자체 반품기간(올해 10∼11월)에 판매처 대상으로 해당 제품을 일괄 수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농진청은 이번 조치를 적극 행정 사례로 설명했다. 하지만 ‘농약관리법’ 소관기관으로서 농약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농진청 관계자는 “행정명령으로 이미 판매된 제품은 강제로 회수할 수 없다”며 “업계와 협의해 농가가 판매처로 제품을 가져오면 환불 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영창 기자 changsea@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