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가 요동칠 때마다 축산농가는 불안하다. 사료값이 축산물 생산비의 절반 이상 차지하지만 배합사료 원료의 80%가량을 수입에 의존해서다. 본지는 배합사료를 대체할 국내 조사료 생산 확대를 위해선 농지제도와 관련 법을 손봐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와 함께 정부 등의 움직임을 싣는다.
“조사료(풀사료)를 급하게 심어보려고 해도 심을 데가 없어요. 휴경지에라도 심도록 길을 열어주면 되잖아요.”
동계조사료 수확을 한달여가량 앞둔 3월10일. 충남 논산의 야곱농장 김계훈 대표(59)는 올해 조사료 생산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어두운 표정이었다. 지난해 가을 잦은 비 소식에 동계조사료 파종이 늦어지며 작황이 부진한 데다, 부족한 조사료를 보충하고자 올봄 급히 파종하려 해도 마땅한 농지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목장 운영에서 사료비가 생산비의 60%를 차지한다며 부담을 호소했다. 사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농가에선 번식 기반을 줄이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난다고도 했다. 딸소를 키우지 않고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두고 “낙농가의 상징적인 위기”라고 표현했다.
최근 중동 전쟁 여파까지 겹치며 배합사료 수급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축산농가들이 농지은행 제도와 관련법을 손볼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농지를 빌려줄 때 작기를 나눠 조사료를 심을 수 있도록 하거나, ‘전전대’ 형태로 임차한 농지에서 조사료를 재배한 농가에도 전략작물직불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지은행은 고령농이나 경영위기 농가의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가 매입·임차·수탁해 청년농·전업농·귀농인 등에게 매도·임대하는 제도로, 2005년 도입됐다.
축산농가들에 따르면 임대 대상이 사실상 청년농 중심으로 제한돼 있다 보니 젊은 임차인이 하계에 벼·논콩을 재배한 뒤 동계에는 휴경하면서 해당 농지를 기성 축산농가에 다시 빌려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현행 제도상 농지은행을 통해 임차한 농지를 전전대하는 것은 불법이다. 당연히 해당 조사료 재배농가는 직불금이나 관련 작업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조사료 생산 확대를 위해 동·하계로 작기를 나눠 특정 기간에 해당 농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기 분할 임대’를 도입해달라고 최근 정부에 건의했다. 전국한우협회도 ‘조사료 생산 확대를 위해선 농지은행 임대 제도개선이 가장 시급하다'는 견해를 전달했다.
오경재 한우협회 정책지도국 차장은 “겨울철 텅 빈 논을 그대로 두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며 “농지 임대 때 이모작 이행을 의무화하거나, 작기를 나눠 실제 동계조사료 재배 농가가 직불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경천 한우협회장은 “농가가 조사료를 재배했을 때 경영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직불금 등 명확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며 “나아가 종자비·작업비 지원단가를 현실화하고 조사료 유통가격과 물량을 공개하는 가격 공시 체계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개선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지과 관계자는 “농지은행을 계약할 때 작기 분할을 도입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파종·수확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계약 기간을 명확히 나누는 등 작기 분할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논산=이미쁨, 김보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