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협동조합을 주식회사나 공공기관으로 보는 것 같다.”
당정이 추진 중인 농협개혁의 방향을 놓고 다수 협동조합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농협중앙회장 출마 요건에서 ‘농축협 조합원’ 자격을 삭제하는 등 협동조합 기본 원칙과 맞지 않는 부분이 곳곳에 보인다는 것이다. 외부 별도 감사기구를 설립하는 동시에 임원 인사, 무이자자금 지원 등에서 정부 입김을 강화하는 다중 규제로 조합원 민의가 협동조합 운영에 반영될 여지가 좁아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회장 관련 의혹, 임직원 비위 등 농협 불신을 초래한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내부통제를 분명 강화해야 하지만, ‘통제’에만 초점이 맞춰진 개혁안은 자칫 ‘식물농협’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원 선출, 무이자자금 지원에 정부 입김=당정의 농협개혁안은 농협 외부에 전국 농축협과 범농협 계열사 전체를 감사하는 독립기구를 신설하도록 했다. 여기에 농림축산식품부의 감독 범위를 넓히고 감독권도 강화한다는 방침을 담았다.
주요 내용은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 준법감시인 임면 보고 ▲농축협 무이자자금 조성·운용 계획 사전 보고 ▲감독 대상 확대(중앙회·농축협 → 지주·자회사 등 포함) ▲행정처분 대상 확대(중앙회·조합 → 지주·자회사 등 포함)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이사회 감독 권한 신설이다.
이와 함께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부회장)와 농협경제지주 대표를 뽑는 인사추천위원회에 정부 몫을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조합장 3명, 농민단체·학계 추천 외부 인사 4명이 참여하는 인추위 구성을 앞으로 조합장 2명과 농식품부(1명), 금융위원회(1명), 농민단체(2명), 학계(1명) 추천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감독을 넘어 인사·자금 등 농협 운용 전반을 정부가 관리하는 방향이다.
이같은 감독권 확대 배경으로는 정부 특별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농협의 취약한 내부통제, 인사·경영의 불투명성, 금품선거 등을 들었다. 당정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조합원 직선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재 회장이 맡고 있는 이사회 의장직을 사외이사가 담당하도록 바꿀 방침이라고도 밝혔다.
◆협동조합 조합원 민의 반영 통로 좁아질 것=하지만 이를 두고 협동조합 자율성을 침해해 ‘관치’ 협동조합으로 되돌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일 전국 농축협 조합장 중심으로 꾸려진 ‘농협법 개정 대응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농민 자조조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농협을 사실상 정부 산하기관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며 국회에 제출된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헌법 제123조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와 ‘농협법’ 제9조 ‘국가와 공공단체는 조합 등과 중앙회의 자율성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조항에 맞게 협동조합의 자정 능력을 다시 한번 고려해달라는 것이다.
이 외에 전문가들은 감독·인사·자금을 정부가 관리하는 안은 수익 창출과 조합원 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농협의 역할을 퇴보시키고, 정부만 바라보는 ‘식물농협’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과거 농협 사업분리 작업에 참여했던 한 퇴직 인사는 “농협의 각종 사업은 중앙회가 마련한 평가 지표를 통해 운영되는데, 외부 감독기관이 생기고 정부 감독권이 강화되면 앞으로는 직원들이 사업보다 감사 지표에 따라 사고 방지에 주력하고, 농협은 정부 입만 바라보는 공공기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협동조합학계의 한 관계자는 “중앙회장은 주식회사와 달리 협동조합에 출자해서 사업을 직접 이용하는 이용자(조합원) 대표”라며 “조합원들의 각종 민원을 청취해 중앙회와 계열사 경영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안은 중앙회장에게 무슨 역할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사외이사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긴다는 구상은 농협을 주식회사로 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선진국 중에서 생산자 자율 조직에 정부가 이렇게 깊숙이 개입하는 사례는 없을 것”이라며 “농협문제는 그동안 농식품부가 감사와 감독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자인한 측면도 있는 만큼, 앞으로 더 촘촘하게 감사·감독할 방안을 찾으면 된다”는 의견을 냈다.
◆농협도 납득할 만한 자정 장치 내놔야=결론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농민을 위해 일하는 농협’으로 개혁하자는 방향으로 모인다.
일부에선 임원 인사에 정부 참여를 무조건 막을 게 아니라 감사·회장 선출 방식 등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회장 권력 견제’ 측면에서 최적의 안을 다시 도출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감사위원장을 조합장들이 선출하거나, 정부·외부 추천을 받아 회장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영인에게 전반을 일임하는 정도의 조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된 경영이사회와 조합장이 참여하고 회장이 의장을 맡는 감독이사회를 분리하자는 제안도 있다.
농협 내부에서 ‘난상토론’ 수준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납득할 만한 자정 장치를 내놓으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박성재 GSnJ 인스티튜트 시니어이코노미스트는 “조합장·조합원들이 모여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더 논의해보고 외부에서 고개를 끄덕일 만한 권력 견제 장치와 신뢰회복 메시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대 기자 hda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