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필요하다. 하지만 과속이다’ ‘앞뒤가 안 맞는다’ ‘농협 구성원 의견을 듣지 않았다’
당정이 추진 중인 농협개혁을 둘러싸고 각종 쟁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농촌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농협개혁은 200만 조합원, 1110명 조합장, 12만 농협 임직원과 밀접히 관련된 사안인데도, 이들을 뒤로한 채 추진하는 ‘톱다운’ 방식의 속도전에 회의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16일 국회에서 여당 주도로 농축협 조합장의 의견을 듣는 간담회가 열렸지만, 이미 농협개혁 법안이 발의된 데다 법안의 산실 역할을 했던 농협개혁추진단이 어떤 논의를 거쳐 개혁안을 도출했는지 공개되지 않은 탓에 공론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당정 개혁안, 국회서도 ‘과속’ 조짐=농협 구성원을 배제한 채 당정이 마련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 심사 단계에서도 ‘과속’ 조짐을 보인다. 해당 법안은 농협 전체를 감사하는 독립기구 신설과, 농협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전환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우려는 이같은 법안이 1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림축산식품법안심사소위에 직회부되면서 커졌다. 통상 법안은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다음 법안소위로 넘겨지는데, 이 절차를 건너뛰며 당정이 속전속결 의지를 품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체회의를 건너뛰면서 제안 취지 설명, 전문위원 검토보고, 대체 토론은 생략됐다.
16일 농축협 조합장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가 열렸지만 시기와 형식을 두고 ‘요식행위’ 우려가 나온다. 28일 법안소위가 예정된 상황에서 ‘소통 부재’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조치 아니냐는 것이다.
당정의 움직임에 대응해 9일 품목농협 조합장들을 중심으로 ‘농협법 개정 대응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데 이어 품목별전국협의회, 전국후계농업경영인조합장협의회 등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합원 직선제, 민의 전달 경로 될까=뜨거운 감자는 농협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전환이다. 당정과 일부 농민단체는 민의 반영을 늘리고 금권선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농협은 물론 주요 농민단체와 농업계 전문가들까지 농협의 정치화, 직선제 회장의 대표성, 수백억원의 비용 소요 등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을 잇달아 제기하는 상황이다.
농축협 조합장과 협동조합 전문가 다수는 현재 조합원들이 중앙회장 선거에 직접 참여해야 할 만큼 의사 전달 창구가 막혀 있느냐는 질문도 던진다. 이석채 농협중앙회 이사(전남 무안 운남농협 조합장)는 “조합장은 자신을 뽑아준 조합원을 위해 각종 사업과 농정활동을 펼쳐야 재선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런 측면에서 조합원 의견을 종합해 중앙회장에게 지원 확대를 건의하고 회장도 이에 반응하는 게 현재의 농협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농협은 조합원 200만명이 각자가 속한 농축협에 출자하고, 이들 1110개 농축협이 다시 농협중앙회에 출자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농협중앙회는 매년 농축협에 약 1조5000억원을 배당·지원하고, 농축협은 이를 다시 조합원에게 돌려준다. 조합원은 농축협의 조합장을 직접 뽑고, 조합장은 조합 대표 자격으로 중앙회장을 선출한다. 모든 조합원은 조합 사업이용에 따른 배당을 받고, 일부는 대의원, 이·감사 등으로 사업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 조합장도 대의원, 품목·사업별 협의회, 이·감사 등의 역할로 중앙회 사업에 참여하면서 조합원의 뜻을 전한다.
협동조합 전문가인 박성재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농협개혁에 필요한 조합원 참여는 매일 이용하는 농축협 ‘사업과 운영’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이지, 소모적인 ‘선거 참여’가 아니다”라며 “농축협 대표를 믿지 못해 조합원이 중앙회장 선거에 직접 나서야 한다면 조합장은 왜 뽑고, 농축협과 중앙회에 이사회나 총회 등 다른 의사결정 구조는 왜 존재하냐”고 지적했다.
유권자 범위를 전 조합원으로 넓히면서, 회장 권한을 줄이겠다는 구상도 모순으로 지적된다. 법안은 농협 독립 감사기구를 만들어 농협 전체 감사·감독을 맡기고 중앙회가 가진 계열사 지도·감독권을 삭제했다. 농협 계열사 인사에도 정부 입김을 키우고, 중앙회 영향력은 줄였다. 농협 안팎에서 “수백억원을 들여 조합원 직선제를 하면서 허수아비 회장을 뽑는 것”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배경이다.
◆2012년 사업구조 개편과 대비=시선은 이명박정부 시절 사업구조 개편으로도 향한다. 당시 진행된 사업구조 개편은 농협중앙회 경제·금융 부문을 지주회사로 분리하는 농협개혁이었다. 현재 논의되는 회장 선출 방식 변경, 감사 독립기구화, 인사추천위원회 도입 등의 사안도 담고 있었지만, 절차는 지금과 판이했다.
2012년 발간된 ‘농협중앙회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 백서’를 보면, 본격 개편 절차는 2008년 11월 첫 공청회를 시작으로 2011년 3월 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2년 이상 소요됐다. 농협과 정부에 각각 개혁위원회를 뒀는데, 정부 구성 위원회에도 농협 관계자가 참여했다. 정부·국회 공청회, 의견수렴, 입법예고, 부처 협의 등의 절차도 모두 거쳤다.
당시 사업구조 개편에 참여한 농협 관계자는 “한쪽에서 ‘농협법’ 조항 하나를 바꾸면 반드시 다른 분야에서 상충되는 지점이 발생했기 때문에 정부와 농협, 정부부처 간 수십차례 토론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김해대 기자 hda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