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축협 소속 농민 조합원 2만여명이 서울에 집결해 졸속 농협 개혁에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농축협 조합원과 조합장들은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인근에서 ‘농협 자율성 수호 농민 결의대회’를 열고, 최근 당정이 마련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농협을 정치권과 외부 세력에게 넘길 수 있는 장치를 뒀고, 운영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국회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정희용·김선교·이만희·서천호 의원 등이 참석해 현장 의견을 반영한 농협법 개정을 촉구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최흥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 김향숙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장, 문재용 한국새농민회장, 박민숙 농가주부모임전국연합회장, 김필운 고향주부모임중앙회장, 박혜진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 회장 등 주요 농민단체 대표들도 현장 목소리를 담은 농협 개혁을 요구했다.
결의대회에서 농민들은 ▲농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관치 감독 즉각 중단 ▲법적 안정성 해치는 독소조항 폐기 ▲농협중앙회의 자회사 지도·감독권 존치로 협동조합 정체성 수호 ▲비효율적 감사 기구 신설안 철회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변경 시도 중단 등 다섯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당정이 추진하는 조합원 직선제가 농협에 정치권 개입을 늘려 정상적인 농협 사업에 차질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당정의 개혁방안을 담아 발의된 ‘농협법 개정안’이 농민 아닌 비조합원에게도 농협중앙회장에 출마하도록 길을 열어두는 등 농협을 정치조직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농협법 개정 대응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박경식 경기 안산농협 조합장은 “오늘 우리 농민들은 우리 손으로 세운 협동조합을 외부에 빼앗길 수 없기에 이 자리에 모였다”며 “지금 발의된 법안은 회장 출마 자격요건에서 조합원을 삭제한 채 외부 인사가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고, 농민 지원사업비 수백억원을 줄여서 치러야 하는 직선제를 추진하겠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농협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하지만, 농민과 함께 설계된 개혁만이 농협을 제대로 고치고 살릴 수 있다”고 현장과의 체계적인 소통을 요구했다.
이만희 의원은 “오늘 전국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함께 해주신 농민 조합원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며 “조합원 직선제가 겉으로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막대한 자금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곧 정치 개입이나 외부 세력의 농협 진출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는 농협의 자율성과 협동정신을 흔들어 65년 전통의 농협을 손아귀에 쥐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농협이 앞서 9~10일 전국 농축협 조합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 871명 중 96.1%가 중앙회장 직선제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외부 독립 감사위원회에 대해서도 참석자들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이에 따른 협동조합 기능 약화를 우려했다. 최흥식 회장은 “지금 농협 개혁은 소수 농민단체 의견이 일반의 의견처럼 반영돼 현장 목소리는 배제돼 있다”며 “농협의 감사·조합감사 기능을 떼어내 독립법인으로 분리하겠다는 것은 대놓고 농협을 관치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들도 정부의 현장 목소리를 배제한 일방적인 개혁 추진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전남에서 올라왔다는 한 농민은 “누가 뭐라해도 조합원들은 스스로 농협 주인이라 생각하는데, 농협에 문제가 있다면 농민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고쳐야 한다”며 “이렇게 관이 주도해서 고쳐놓고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무르지도 못할텐데 그땐 어떻게 할거냐”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결의문을 낭독한 뒤 일부 비대위원들은 삭발을 하며 졸속 농협 개혁에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비대위는 결의문을 국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해대 기자 hda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