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삑, 삑, 삑.’
4월28일 오후 경남 창녕의 한 마늘밭. 경쾌한 신호음이 평온한 농촌 공기를 가른다. 두 손과 두 발이 페달·핸들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지만, 트랙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앞으로 치고 나간다. 울퉁불퉁한 밭 위를 가로지르며 전진과 후진, 선회까지 물 흐르듯 이어진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트랙터 운전석인데 안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고개를 돌리면 뒤편에선 로터리가 성실하게 땅을 갈고 있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리지만, 운전자는 널찍한 전면 유리 너머 푸릇푸릇한 마늘밭을 감상할 뿐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가상현실(VR) 체험을 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대동이 최근 출시한 인공지능(AI) 트랙터 ‘HX1400AI’를 시승한 뒤 로터리 작업을 진행한 소감이다. 3∼4분 남짓 짧은 시간이었으나 국내 농기계 기술의 도약이 남긴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조작 방법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간단했다. 기자는 체험을 위해 트랙터에 탑승했지만, 농가는 트랙터를 농경지 입구에 가져다 놓으면 이미 농사일의 90%를 마친 셈이다. 기체에 올라타 경작지·작업경로를 설정하고 무인 주행을 선택한 뒤 경작지 입구점 인식, 카메라 동작, 미션 단수, 피티오(PTO·트랙터 엔진의 회전력을 외부 작업기로 전달하는 장치) 등 주행모드를 선택하면 준비는 끝난다.
이후 농지 경계의 농로로 나와 스마트폰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면 트랙터가 직진, 선회, 작업기 구동까지 농작업 모든 과정을 스스로 수행한다.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여러대 구동도 가능하다.
박화범 대동 AI기술개발팀장은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농업기계 검정기준’에 따라 작업자가 필지 경계선 기준 반경 20m를 벗어나면 트랙터가 자동으로 정지하도록 설계됐다”며 “AI 기반 비전 카메라가 장애물을 인식하고 최적 경로를 생성하는 것이 기존 자율주행 트랙터와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업기를 장착하면 자동으로 인식하고 작업기마다 다른 경로를 산출하고 타사 장비와도 연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으로선 작업기 중 로터리·쟁기·써레·배토기만 사용할 수 있지만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는 게 업체 측 얘기다.
4월 본격 양산에 들어간 AI 트랙터는 초도 물량 8대가 이미 농가에 인도됐다. 대동은 올해 해당 제품을 300대 이상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운전에 참여한 창녕에서 2만6000㎡(8000평) 벼농사를 짓는 성광석씨(58)는 구매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성씨는 “농사를 짓다보면 밭을 갈거나 두둑을 만들 때 똑바로 직진하기조차 쉽지 않은데, AI 트랙터는 오차 없이 움직여 작업 효율이 높고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운행할 수 있어 초보 귀농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감병우 대동 개발본부장은 “국내 소규모 농경지에 특화한 AI 트랙터로 논둑을 정밀하게 인식하기 위해 2022년부터 510만장의 데이터를 축적해왔다”며 “기술 고도화를 지속해 연말엔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로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녕=조영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