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칼자국’(2007)에는 평생 칼국숫집을 운영한 주인공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주인공 ‘나’는 어머니를 ‘칼을 쥔 여자’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칼로 썰고 다져 가족의 끼니를 챙기고 ‘나’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머니의 칼자국에는 조건 없는 사랑과 인내가 깃들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을까. ‘나’는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몸 어딘가가 저릿했다. 그가 음식에 남긴 칼끝이 제 안에 박혀 있는 듯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했다.
무능했던 아버지 탓에 ‘나’의 어머니는 빚을 내 손칼국수 가게를 열었다. 식당은 시골서 여자가 소자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솥에 바지락과 다시마·파·마늘·소금을 넣고 중간에 면을 넣은 뒤 뜸을 들여 만들었다. 그가 국수를 삶으면 ‘나’는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렸고 갓 익은 면발 한두 젓가락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칼국수는 훌륭해서 가게는 시장을 들른 농부부터 타지 사람들까지 모이는 곳이 됐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장사하다가 칼날에 다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물기 마를 틈 없는 손은 쉽게 아물지 않았다. “엄마는 자식보다 손님이 더 좋아?”라는 어린 ‘나'의 투정도 들어야 했다.
“어머니의 칼질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한가지 기술을 터득한 사람의 자부, 먹고살고 있다는 안도, 단순한 일을 반복할 때 나오는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칼을 놓지 않았다. 내가 졸업할 때까지, 시집갈 때까지만 칼을 잡겠다고 했던 어머니는 그 약속을 넘겨 결국 부엌에서 국수를 삶다 쓰러졌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 생각을 했다. 그의 희생 덕분에 한번도 굶주려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어머니가 식구를 먹여 살리려 지난한 고통을 감내했을 터. 책 속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이야기에 빠져드니 그 맛을 한번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서울 금천구 독산동 ‘바지락손칼국수’를 찾았다. 박찬덕씨(64)는 15년째 이곳을 운영한다. 새벽이면 인천 연안부두에서 들여온 바지락을 손질한다. 이틀에 한번은 두시간 반 동안 밀가루 한 포대를 털어 발로 밟으면서 칼국수면을 반죽한다.
“칼질하다 다친 적은 없는데 손이 툭툭 이렇게 되더라고요.”
일하면서 위험했던 적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손을 펼쳐 보였다. 손가락 마디마다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았는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모습이 측은하다. 손가락뿐만 아니라 어깨도 말썽이다. 그가 짊어졌던 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사에 나서기 전 그는 남편 사업이 망하면서 돈 한푼 없어 남의 일을 닥치는 대로 맡았다고 한다. 그러다 20년간 운영하던 주인이 건강이 안 좋아져 내놓은 지금 가게를 빚내서 인수했다. 한달간 비법을 전수받았지만 수십년 솜씨에 익숙해진 손님들 텃세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면 두께가 조금만 달라도 옛맛이 아니라고 쑥덕거리는 말이 비수가 돼 돌아왔다.
“우리 엄마는 더 힘들게 사셨는데 이게 뭐가 고생이냐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하루하루 버텼죠.”
보릿고개에도 자식을 굶기지 않았던 어머니는 그의 버팀목이었다. 해장국집을 운영하면서 7남매를 키웠던 어머니가 어릴 적에는 왜 그렇게 남에게 퍼주나 싶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도 이곳을 찾는 이를 생각하며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정직한 손맛과 한결같은 응대로 찾는 이가 늘었다. 10년이 넘는 인고 끝에 빚도 다 갚고 두 아이 대학 공부까지 다 마쳤단다.
시장하던 차 바지락손칼국수를 주문하니 직접 만든 반죽을 칼로 썰어 가닥을 푼다. 바지락을 우려낸 육수에 삶은 면, 애호박·당근·고추·파를 넣고 팔팔 끓인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덕에 목넘김이 좋다. 싱싱한 바지락이 톡톡 터지면서 감칠맛을 더한다. 쉽게 퍼지지 않는 면은 마지막 한줄을 흡입할 때까지 탄력을 유지한다. 여기에 아삭하고 매콤한 김치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쉴 새 없이 젓가락질하며 김이 나는 국수를 먹다보니 경직됐던 몸도 스르르 풀리는 것 같다.
어머니의 억척스럽고도 모진 삶은 희생이나 사랑·모성 같은 짧은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다. 자식이 배곯지 않게 세상 속 온갖 악전고투를 이겨낸 그 부모님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5월이 왔다.
장다해, 사진=강재훈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