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과 식물의 씨앗을 곡물이라 부른다. 세계 곡물 생산량 1위는 옥수수다. 하지만 인간이 식량으로 먹는 곡물로 치면 밀과 쌀 다음으로 3위다. 벌써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옥수수는 가장 재미있는 곡물이다.
소소한 기억부터 시작하면 나는 찰옥수수가 싫다. 스위트콘이나 초당옥수수도 싫다. 어렸을 때 먹던 그 옥수수가 먹고 싶다. 단맛이 충분치 않아서 반드시 감미료를 넣고 삶아야 했지만 그 덕분에 입에 물고 쪽쪽 빨면 감미료의 단물이 잘도 빨렸던 노란 옥수수. 찰옥수수처럼 알이 탱글탱글하게 떨어지지 않아 깔끔하게 먹기는 힘들었던 그 옥수수의 향기가 그립다. 내가 좋아했던 그 옥수수는 나중에 알고 보니 사료용 일반 옥수수(메옥수수)였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옥수수는 일반 옥수수와 식용 옥수수로 구분한다. 일반 옥수수는 주로 사료용 옥수수이고, 식용 옥수수는 찰옥수수·단옥수수·초당옥수수·튀김옥수수로 구분한다. 일반 옥수수라고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진 쌀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은 찰옥수수와 가깝다. 그 결과 요즘 마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옥수수는 거의 대부분 찰옥수수다. 나처럼 일반 옥수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제법 있지만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렵다.
사료용이든 식용이든 옥수수에는 영양이 풍부하다. 옥수수의 노란색도 그냥 색이 아니다. 눈의 황반색소를 이루는 성분으로 알려진 ‘제아잔틴(Zeaxanthin)’은 옥수수와 이름부터 연결돼 있다. 제아(Zea)는 옥수수의 학명 ‘제아 메이스(Zea mays)’에서 온 말이고, 잔틴(xanthin)의 ‘xanth-’는 노란색을 뜻한다. 말하자면 제아잔틴은 ‘옥수수에서 온 노란 색소’라는 뜻이다.
옥수수는 가열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유익한 영양소를 더 많이 방출한다. 캔 옥수수의 항산화물질 활성도는 가정에서 요리한 옥수수보다 더 높다. 통조림은 고압으로 100℃보다 높은 온도에서 가열하므로 식물 세포벽에 단단히 붙잡혀 있던 페룰산(ferulic acid)과 같은 항산화물질이 더 많이 풀려난다. 이런 가열 과정은 옥수수를 캔에 넣고 나서 진행되므로 캔 속 국물에 각종 영양물질이 녹아든다. 캔 국물을 버리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요리에 활용하는 게 낫다.
옥수수에 숨겨진 또 다른 영양소 ‘나이아신’도 그냥 먹을 때는 체내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 옥수수의 나이아신은 상당 부분이 결합형으로 갇혀 있어서다. 고대 메소아메리카 원주민은 ‘닉스타말화’라는 요리법을 고안해 나이아신의 생체이용률을 높였다. 약 9000년 전 인류는 옥수수의 조상인 야생종 ‘테오신테’를 오늘날의 옥수수로 만들 수 있게 개량했다. 그 과정에서 석회수나 재 같은 알칼리성 물에 익히고 불리는 조리법 ‘닉스타말화’가 탄생했다. 덕분에 옥수수가 갈기 쉬워졌을 뿐 아니라 나이아신도 체내에 온전히 흡수될 수 있는 상태로 바뀌었다. 반면 이 지혜를 모른 채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유럽의 가난한 농민과 미국 남부의 노동자들은 훗날 심각한 나이아신 결핍증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 성동구의 작은 식당 ‘맷돌’에서는 국산 옥수수를 닉스타말화해서 만든 멕시코 전통 방식의 토르티야와 토스타다를 맛볼 수 있다. 이런 가공에는 찰옥수수보다 찰기 없는 메옥수수가 더 잘 맞는다. 국산 옥수수를 사용하기 위해 경북 영천과 강원 평창 농장에서 품앗이하며 공부한 요리사가 닉스타말 옥수수를 이용한 한입 거리부터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타코를 코스로 제공한다. 옥수수의 재미는 이렇게 이어진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