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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군침스틸러] 그리움·동경 ‘모락모락’…모정 담아 건넨 마지막 선물 ‘흰쌀밥’
🌾 Crop Growing

[군침스틸러] 그리움·동경 ‘모락모락’…모정 담아 건넨 마지막 선물 ‘흰쌀밥’

Nongmin NewspaperJul 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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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내미 쪼매 있다가 신랑 따라 일본 갑니더. 지가 짜달시리 뭐를 해줄 형편은 못되고, 우리 땅 쌀맛이라도 뵈주고 싶습니더. 그거라도 멕이가 보내고 싶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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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친 한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드라마 ‘파친코’. 드라마 ‘파친코’ 스틸컷.

“우리 딸내미 쪼매 있다가 신랑 따라 일본 갑니더. 지가 짜달시리 뭐를 해줄 형편은 못되고, 우리 땅 쌀맛이라도 뵈주고 싶습니더. 그거라도 멕이가 보내고 싶어예.”

“세홉이데이. 선자 어매도 먹음서 설움 쪼매 삼키라이.”

일제강점기, 우리 땅에서 자란 쌀 한톨까지 일본으로 샅샅이 실려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1920년대엔 일제가 산미증식계획을 펼치면서 엄청난 양의 쌀을 수탈해 갔다. 그럼에도 조선 사람은 삶을 향한 집념을 쉬이 꺾지 않았다.

굶주림과 가난 속에서도 그들은 다시 논을 일구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렸다. 언젠가 온 가족이 둥글게 둘러앉아 흰쌀밥을 배불리 먹을 날을 꿈꾸며 드라마 ‘파친코’(2022년, 코고노다, 저스틴 전 감독)는 바로 그 모진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재일 한국인의 삶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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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선자는 남편과 함께 일본행 배에 오르기 전 양진이 지어준 흰 쌀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 ‘파친코’ 스틸컷.

당시 수많은 조선인이 살아남으려 고향을 등졌다. 낯선 땅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별과 수모,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드라마의 주인공 선자(김민하 분) 역시 남편 이삭(노상현 분)의 손을 잡고 일본행 배에 오른다.

자식을 타국으로 보내야 하는 어미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곁에 붙잡아 둘 힘도, 넉넉히 쥐여줄 노잣돈도 없는 선자의 어머니 양진(정인지 분)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쌀밥’이었다. “내 고향, 네 어머니를 잊지 말라”는 무언의 당부이자, 어떤 시련이 와도 부러지지 말고 살아내라는 응원이었으리라.

양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쌀을 구하러 다닌다. 조선인에게 쌀을 내줬다간 어떤 화를 당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곡물상 노인은 끝내 어미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몰래 쌀을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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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은 어렵게 구한 곡물을 정성스레 씻어 모정을 담아 가마솥에 안친다. 드라마 ‘파친코’ 스틸컷.

양진은 어렵게 구한 곡물을 정성스레 씻어 가마솥에 안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흰쌀밥을 대접 가득 꾹꾹 눌러 담아 딸 앞에 내놓자 선자는 밥을 먹다 끝내 눈물을 쏟는다. 눈물 젖은 밥에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모정, 평생 가슴에 품고 살 고향의 맛이 녹아들지 않았을까.

이처럼 한국인에게 쌀밥은 피땀과 한(恨)이 서린 음식이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보릿고개로 이어지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흰쌀밥은 때로는 동경, 때로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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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 ‘이천 진미쌀밥’에서는 우리쌀로 갓 지은 고슬고슬한 솥밥을 맛볼 수 있다. 이천=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그 귀한 쌀밥을 맛보러 경기 이천시 마장면 ‘이천 진미쌀밥’으로 향했다. 이곳은 이천 쌀 ‘알찬미’를 쓴다. 이천 쌀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최적의 기후 조건에서 자라 조선시대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로 밥맛이 뛰어났다. 일제강점기에는 ‘특품’ 대접을 받아 대량으로 반출했던 아픈 역사를 지니기도 했다.

이곳은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밥을 짓는다. 장수옥돌솥에 계량컵으로 쌀과 물의 양을 맞춰 담고 그 위에 검은콩 몇알을 올려 조리기계에 올린다. 15분5초가 지나면 쌀알이 익고 뜸 들이기까지 끝난 돌솥밥이 완성된다.

엄순심 사장(68)은 “맛있는 밥은 좋은 쌀과 좋은 물 그리고 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쌀은 자란 지역의 물로 지어야 제맛이 나고, 물의 양부터 불 조절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밥맛이 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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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인 ‘진미정식’. 조선시대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이천 쌀의 명성에 걸맞게 수라상처럼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성찬이 품에 안긴다. 이천=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쌀밥에 곁들여지는 반찬 역시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조선시대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이천 쌀의 명성에 걸맞게 수라상처럼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성찬이 품에 안긴다.

대표 메뉴인 ‘진미정식’을 주문하면 충남 태안에서 온 꽃게로 손수 담근 간장게장, 흑돼지를 사용해 육즙 가득한 떡갈비, 전남광주 목포에서 올라온 매콤 새콤한 홍어무침이 나온다.

밑반찬도 제철 산지에서 공수한 산해진미와 직접 기른 농산물로 차려진다. 충북 제천에서 공수한 콩으로 끓여낸 구수한 청국장을 필두로 제천의 물고추무침, 여수의 방풍나물, 경북 울릉도의 부지깽이나물을 상에 올린다. 감자·가지·대파 등은 식당 뒤편 텃밭에서 재배한 것이다. 매년 11월이면 경기 김포 대명항에서 사들인 새우로 젓갈을 만들어 3000포기 김치도 담근다.

마침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돌솥밥을 크게 한술 떠 입에 넣었다. 밥알 하나하나가 탱글탱글하게 살아 움직이듯 씹히다 이내 부드럽게 넘어간다. 정성 가득한 반찬들을 차례로 올려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화려한 어떤 반찬을 곁들여도 주인공인 ‘쌀밥’은 본연의 존재감을 오롯하게 드러낸다.

누구나 마음먹으면 숫눈처럼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시대다. 그 풍요로움을 평소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서 현대인의 비극이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잊고 지냈던 흰쌀밥의 귀함과 그 속에 서린 감사함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야 할 이유를 작품 ‘파친코’에서 발견했다.

이천=장다해 기자 daha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