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하지만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다보면 오히려 기운이 쭉 빠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제격인 음식이 바로 초계탕이다. 창자 끝까지 시원해지는 국물로 열을 식히고 닭고기로 단백질을, 면발로 탄수화물을, 채소로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으니 가히 여름용 종합영양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경기 양주 ‘닭있는풍경’은 지난해 문을 연 신상 초계탕 집이다.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동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맛집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득규 대표는 40여년간 요식업에 몸담으며 다양한 음식을 배웠다. 15년 전쯤 이북 실향민이 경기 파주에서 대를 이어 하는 전문점에서 정통 조리법을 익혔고, 이후 연구를 거쳐 남녀노소 호불호 없이 즐기는 초계탕을 완성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은 겨자가 많이 들어가고 간이 세서 아이들이 먹기 곤란하다”며 “아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양주를 초계탕의 성지로 만들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곳에선 1.8㎏이 넘는 18호 대형 닭을 쓴다. 어린 닭은 삶았을 때 살이 푹 퍼져버리고 살코기도 얼마 나오지 않아서다. 커다란 솥에 닭과 양파·마늘·생강·고추씨·약재를 함께 넣고 2시간30분 동안 끓여 기름기와 비린내를 쫙 뺀다. 그러고 나선 통째로 영하 1℃ 냉동고에서 24시간 숙성한다. 이 과정에서 닭살의 쫄깃함이 살아난다. 숙성을 마친 닭은 뼈를 발라 결대로 정성껏 찢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이 대표는 지름이 어른 손 두뼘은 되는 커다란 대접을 꺼낸다. 직접 담근 시원한 동치미 국물, 겨자, 레몬·사과·배로 만든 상큼한 과일즙을 담고 아삭아삭한 얼갈이물김치와 오이, 찢어놓은 닭고기, 적양배추 채, 메밀싹, 도토리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그 위에 살얼음이 동동 뜬 비법 육수를 폭포수처럼 흘려보낸다. 닭 육수에 레몬·사과·배·오이를 끓여 만든 채수를 황금 비율로 섞은 것이다. 이어서 직접 볶은 호박씨·아몬드·해바라기씨를 살살 뿌리면 화룡점정!
잠깐! 아직 초계탕을 맛보기엔 이르다. 이 집에선 먼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전채 요리 삼총사인 삶은 닭 날개, 메밀전, 닭 껍질 튀김을 맛봐야 하는 것이다. 차갑게 식힌 닭 날개는 프라이드치킨이나 삼계탕 속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껍질이 가장 많이 붙은 부위답게 야들야들한 식감이 일품이고, 뼈에 감질나게 붙어 있는 살코기를 바르다보면 주인공인 초계탕이 더욱 간절해진다. 닭 껍질 튀김은 기름진 닭 껍질과 바삭한 튀김옷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고소한 풍미를 채웠고, 메밀전은 특유의 심심한 맛으로 앞선 두 음식의 진한 여운을 차분히 정리해줬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계탕을 영접할 차례. 닭고기와 채소로 층층이 올린 ‘미식의 성’을 아쉽게도 무너뜨려야 할 시간이다. 국자로 잘 섞어 앞접시에 덜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입 떠넣자 새콤함과 시원함이 더위에 지친 혀의 미뢰를 깨운다. 더 달라는 세포의 외침에 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차차, 국물을 편애하다 건더기를 섭섭하게 하면 되나. 초계탕의 꽃! 닭고기부터 건져낸다. 숙성한 덕에 단단한 듯하면서도 쫄깃하고 탄력 있는 식감은 단순히 물에 삶아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얼갈이와 오이·적양배추는 육수를 가득 머금어 그 상큼함이 배가 됐다.
한국인의 끼니에 탄수화물이 빠질 수 없는 법. 메밀면을 말아 초계국수까지 야무지게 먹어야 한다. 이곳은 메밀 함량 50% 이상의 반죽을 직접 만들어 손님상에 나가기 직전 면을 뽑는다. 메밀엔 소화를 촉진하는 성분이 있어 배부른 상태에서도 곁들이기 좋고 성질이 차가워 몸의 열을 내려준다. 냉면보다 한결 부드러운 메밀면은 후루룩 잘 넘어갔다.
닭으로 시작해 메밀로 매조진 맛의 교향곡을 만끽하고 나니 뱃속은 든든하고 머리는 시원해졌다. 초계탕 한그릇이면 족하다. 올여름 불볕더위가 두려울쏘냐.
양주=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