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찾은 제주 서귀포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센터 시험 온실. 귤굴나방 유충이 잎을 갉아먹는 시기지만 시설하우스 내 감귤나무잎은 병해충 흔적 하나 없이 깨끗했다. 비결은 바로 인공지능(AI)과 유인 물질(페로몬)이다.
감귤나무 사이에 설치된 ‘AI 스마트 무인예찰트랩’은 날아든 나방을 촬영해 AI로 분석한다. 또한 기둥에 매달린 작은 원통형 장치인 ‘해충 생체시계 동기화 교미교란방출기’는 일정한 간격으로 성페로몬을 내뿜는다. 이를 통해 나방의 번식을 막는다는 게 기관 측 설명이다.
농진청이 최근 개발한 이 기술은 뛰어난 방제 효과와 높은 가격경쟁력이 알려지면서 별다른 시범사업 없이도 농가·지방정부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이 기술을 개발한 권순화 농진청 원예원 감귤연구센터 농업연구관은 “농가가 매일 밭을 돌며 해충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다보니, 예찰하지 않고 시기에 맞춰 농약을 살포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AI 스마트 무인예찰트랩은 미량의 페로몬으로 해충을 유인한 뒤 끈끈이트랩에 붙은 해충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지금은 나방·파리류를 포획하는 ‘델타형’과 노린재류를 포획하는 ‘로켓형’ 2종이 보급 중이다.
촬영한 영상은 통신망을 통해 서버로 전송되고, AI가 해충의 종류와 개체수를 자동 분석해 웹과 휴대전화로 농민에게 제공한다. 장비 1대로 1㏊를 관리할 수 있다.
AI의 해충 판별 정확도는 91% 수준이다. 장비는 태양광으로 작동해 별도 전원 공급이 필요 없고, 농민은 한달에 한두번 끈끈이트랩만 교체하거나 자동으로 교체되는 모델을 구매하면 된다.
권 연구관은 “기존 국내외 유사 제품은 1대당 500만원 안팎이지만, 합금 대신 강화플라스틱을 사용하고 현장에 꼭 필요한 기능만 장착해 가격을 100만∼150만원 수준으로 낮췄다”고 말했다.
2023년 상용화 이후 저렴한 가격과 유지관리 편의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농민들이 알아서 제품을 구매했고 지방정부도 공공예찰용으로 도입했다. 6월 기준 전국 660곳에서 1210대를 운영 중이다.
해충 생체시계 동기화 교미교란방출기는 해충마다 다른 활동 시간에 맞춰 성페로몬을 고농도로 방출해 수컷이 암컷을 찾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한번 설치하면 예찰트랩에 해충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5∼6개월 자동으로 작동해 작기 내내 방제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990㎡(300평) 기준 1대를 설치하면 되는데 1대당 가격은 7만∼10만원이다. 사과·배·복숭아·자두·살구 등 나방류 피해가 많은 과수원을 중심으로 보급되면서 지난해에만 3335㏊에 설치됐다. 전년(1353㏊) 대비 2.5배 늘어난 수준이다.
권 연구관은 “스마트 병해충 관리체계를 적용하면 관행보다 병해충 방제 시간은 70% 감소하고, 농약 살포 횟수는 40% 줄일 수 있다”며 “다만 교미교란 기술은 나방류·깍지벌레에만 적용 가능해 앞으로 노린재·진딧물·응애까지 방제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귀포=조영창 기자 changsea@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