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양배추 1통당 500원, 가지 1개당 140원, 오이 1개당 180원…. 도시 마트·시장에서 그보다 2~7배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입해 온 시민들은, 농민들이 판매하는 농산물의 가격(실제 산지 공판장 가격)을 접하며 충격을 받았다. 시민들은 그 농산물을 ‘헐값’에 구입하며 농민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누리지 못함을 절실히 느꼈고, 폭염을 무릅쓰며 서울로 모인 농민들이 정부를 향해 외친 ‘농산물 공정가격제 실시’, ‘농업생산비 폭등 문제 해결’ 등의 목소리가 얼마나 정당한지를 체감했다. 농민·시민은 그렇게 다시 하나가 됐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농민의길) 주최로 열린 ‘농자재값 폭등! 농산물 가격폭락! 근본 대책 촉구! 7.7 전국농민대회’는 그동안 열어온 농민대회와는 사뭇 달랐다. 사상 최초로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하는 농민대회’를 표방하며, 농산물 가격폭락으로 힘겨워하는 농민들이 직접 도시민에게 농산물을 판매하는 장터를 열었다. 이름하여 ‘팔수록 빚더미 장터’였다.
팔수록 빚더미 장터
장터는 본대회에 앞서 이날 오후 1시부터 열린 사전대회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폭락으로 판매할 곳을 잃은 양파·마늘·양배추·참외·방울토마토 등의 농산물을 갖고 와 시민들에게 헐값에 팔았다. 농산물을 구매하러 온 소비자들은 그 ‘헐값’이 실제 산지 공판장에서 낙찰된 뒤 농민들이 손에 쥐는 금액임을 알게 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농민의길은 이날 갖고 온 농산물의 도시 소비자 가격과 실제 농민이 받는 가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시민에게 보여줬다.
양파 1kg : 농민 수취가 650원/ 소비자 가격 1700원
양배추 1통 : 농민 수취가 500원/ 소비자 가격 2400원
마늘 500g : 농민 수취가 2000원/ 소비자 가격 8000원
오이 1개 : 농민 수취가 180원/ 소비자 가격 490원
애호박 1개 : 농민 수취가 250원/ 소비자 가격 990원
가지 1개 : 농민 수취가 140원/ 소비자 가격 990원
방울토마토 1kg : 농민 수취가 1600원/ 소비자 가격 4450원
참외 1kg : 농민 수취가 800원/ 소비자 가격 6000원
그나마 차이가 덜 나는 양파도 농민들이 받는 가격과 도시 소비자 가격 간에 2.6배의 차이가 났으며, 특히 격차가 심한 가지의 경우 무려 7배의 가격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도대체 왜 이토록 농민 수취가와 소비자 가격 간 격차가 심한 것인지, 농민 수취가는 어째서 이렇게 터무니없이 낮은지 등에 대해 농민들에게 물었다.
농민들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그치지 않는 농산물 수입정책·할인사업 등 각종 ‘물가관리’ 정책, 그리고 기형적 유통구조 속에서 중간 유통과정이 비대해짐에 따른 소비자 불이익 문제 등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국내 대표 종합유통업체 중 하나였던 홈플러스가 파산 단계에 이르면서, 홈플러스에 농산물을 납품해 온 농가들이 졸지에 판로를 잃어 어쩔 수 없이 가락시장에 납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의 분석이다. 가락시장에 조금만 납품 물량이 늘어나도 가격폭락이 심화하는 판에, 홈플러스라는 대형 유통업체가 위기를 겪자 역대급 가격폭락의 무시 못 할 원인이 됐다는 뜻이다.
경북 성주군에서 지역 농민들의 참외를 한가득 안고 와 팔던 농민 이재동씨는 “참외 한 상자(10kg)당 2만원은 받아야 그나마 (생산비 투자한) 본전이라도 뽑는데, 최근 공판장에서 받은 가격은 한 상자당 1만5000원이다. 생산비도 못 건지는 수준”이라며 “그나마 그중 ‘못난이(파치)’의 경우 저가로 액비 만드는 곳에 1kg당 150원(10kg 환산시 1500원)에 판다. 원래 250원 받았는데 (파치가)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150원으로 깎였다”고 밝혔다.
사전대회 무대에 오른 강원도 춘천 농민 김덕수씨는 “한 시민이 (김씨가 춘천시농민회 회원들로부터 받아온 애호박·가지 등을) 사가면서 ‘왜 이렇게 싸게 파냐?’고 묻더라”며 “오늘 현장에서 파는 가격이 실제 가락시장에 농산물 올리고서 (낙찰 뒤) 제 통장에 찍히는 가격이라, 그 가격대로 파는 거라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김덕수씨가 가락시장에 넘긴 인큐베이팅(비닐 포장) 애호박 한 상자(20개)당 가격은 5000원. 예년 같으면 2만원 안팎 수준이어야 하는 애호박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다. 봉지를 안 씌운 애호박은 한 상자당 3000~4000원에 팔린다는 게 김덕수씨의 설명이다.
그는 “오늘 (장터를 열기 위해) 농민회원들에게 농산물을 달라고 하는 게 너무나 미안했다”고 한 뒤 “농민들이 이렇게라도 해서 언론에 기사 한 줄 나면 그나마 좀 나아질까, 청와대에 (농산물을) 반납하고 나면 정부 정책이 조금이라도 바뀔까, 농민회원들을 설득하며 농산물을 갖고 왔지만 사실 너무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다”며 울컥했다.
농민들은 이러한 현장 상황을 이야기하며 이제야말로 농산물 가격폭락을 방지하고 농민이 농사지으며 살 수 있도록 ‘농산물 공정가격’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함과 함께, 생산비 폭등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도 주문했다.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정부는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수입농산물을 들여오고, 할인행사로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려 한다. 그러나 이는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임시방편이다. 농민에겐 생산비를 보장하지 않고, 국민에겐 안정적 먹거리를 보장하지 않는 정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정부는 농업 영역을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폭등한 농자재 가격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농민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필수농자재 지원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반값농자재 지원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농민 생산비 부담을 근본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재확인한 농민대회
지난달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가 경북 상주에서 진행했던 농민·시민 연대활동(농활)에 참여했던 시민 김나현씨 역시 김덕수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아파했다. 김나현씨는 ‘팔수록 빚더미 장터’에서 헐값 농산물을 구매한 뒤 “만약 농민들이 수취가와 소비자 가격 비교 자료만 보여줬다면 ‘아, 안타깝다’ 정도에 그쳤을 텐데, 실제 이 가격으로 판매하시는 걸 보며 저부터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농민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이 정당한 값을 받아야 한다는 데 한층 더 공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 단위에서 농민학생연대활동으로써의 농활에 참여했던 학생들도 농민들의 ‘농산물 공정가격제 시행’, ‘농업생산비 추가편성’ 등의 구호에 적극 공감했다. 발언자로 무대에 오른 성공회대 농활 참가 학생 심현지씨는 지난달 23~30일 전북 익산으로 7박 8일간 농활을 다녀온 뒤 농업·농민을 향한 생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심씨는 “저희 농활대원들은 하루 몇 시간씩 며칠만 일해도 너무 힘들었는데 농민들은 이 힘든 농사를 매일매일, 평생 지어왔다. 그럼에도 비룟값·기름값 등 생산비는 오르건만 농산물 가격은 폭락한다. 왜 농민들이 땀 흘린 만큼 농산물 가격을 보장받지 못하는 건가? 이러한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며 “농민이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 농산물이 제값 받고 농민이 웃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저 역시 행동하겠다”고 다짐해 농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날 농민들은 장터 개설 등을 통해 농민대회를 농민‘만’의 대회가 아닌 농민·시민 모두의 한마당으로 만들어 가고자 노력했다. 그에 화답하듯 이번 농민대회엔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비농민 시민, 특히 청년들이 가득했다. 농활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참가한 대학생들, 농활의 기억을 안고 있는 청년들, 그리고 남태령대첩의 기억을 안고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에서 활동하는 ‘말벌 동지’들이 농민들과 함께했다.
“국민 먹거리 안전 위협하는 CPTPP 추진, 있어선 안 될 일”
이날 농민대회의 또 다른 핵심 요구는 ‘농민생존권 위협하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추진 즉각 중단’이었다. 윤일권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또다시 ‘무역 다변화’ 논리 아래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을 부추기고 국민 먹거리 안전을 위협할 CPTPP를 추진하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규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일본 방문 당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CPTPP 가입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2년 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 CPTPP 가입을 추진하다가 농민·시민의 저항으로 가입 논의를 중단했건만, 다시금 “농산물 시장 완전 개방으로 국가 검역주권도, 식량주권도 포기하는 CPTPP 가입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는 게 윤일권 상임대표의 정부를 향한 경고였다.
박성훈 (사)전국사과생산자협회 회장은 “CPTPP 논의 과정에서 농민 목소리는 늘 배제됐다. 이젠 국민주권정부에서도 밀실협상, 사후통보라는 반농민적 작태가 반복되는 것인가”라고 규탄한 뒤 “CPTPP 가입으로 뉴질랜드 등 CPTPP 가입국의 사과가 우리나라에 수입되면 막강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고, 철저한 검역조치에 따라 보호받던 국내 사과산업은 붕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CPTPP 가입을 결사반대한다”고 외쳤다.
“‘농산물 공정가격제 보장’ 외침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게끔”
농민대회 참가자들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본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 앞으로 행진했다. 농민·시민 합쳐 약 15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이윽고 청와대 앞에 당도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래 농민·시민이 처음으로 청와대 앞에 다다른 것이다. 농민들은 양배추·가지 등의 농산물을 청와대에 ‘반납’하는 상징 의식을 진행했다. 국민주권정부가 농산물 가격폭락 및 생산비 폭등 문제를 방치하고, 외래 농산물 수입개방 압력을 수용한다면 농민들은 더는 농사짓고 살 수 없음을 경고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윤일권 상임대표는 “우리의 외침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게끔, 앞으로도 열심히 투쟁하겠다”며 “농산물 공정가격제 실현을 위해 투쟁할 땐 투쟁하고 협상할 땐 협상해서 농민들의 정당한 땀의 대가가 반드시 보장받도록 노력하겠다”고 한 뒤 “오는 9월 11일 이경해 열사 기일을 맞아 9월 10일 전국 동시다발 광역 농민대회를 열고, 11월엔 한 해를 결산하는 전국농민대회를 열고자 한다. 기필코 공정가격제를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