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의 상설시장인 고산미소시장엘 간 적이 있었다. 문화관광형 테마시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서점도 있고 바느질 가게도 있고 가죽공방도 있다. 들어가 보고 싶은 밥집도 있지만 더 특이하고 재미있는 건 ‘비빌언덕 중개사무소’라 이름 붙은 공간이었다. 지역과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코워킹스페이스다. ‘농산물 수확하러 갑니다’란 종이를 붙여놓은 농산물가게도 있다. 가게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어떤 농산물을 들고 올지 많이 궁금한 가게다. 이런 흥미로운 시장을 끼고 서는 오일장이라니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그래서 고산오일장을 찾아나섰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이곳이 오일장이 맞나 싶게 아무것도 없었다. 모종을 파는 매대 하나와 마늘을 놓고 앉아서 사가라고 하시는 할머니를 지난다. 상설시장 쪽 대로에서 시작해 터미널 쪽으로 여기저기 마늘을 파는 상인들만 보인다. 전국 어디나 마늘을 수확해 파는 시기이기는 하다. 그래도 너무 아무것도 없는 오일장터다. 도로에 면한 가게들을 둘러본다. 기름집, 방앗간, 전자제품 고쳐주는 만물상이 보인다. 순돌이아빠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가게다. 오래전에 금성 가전제품을 파는 곳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가게도 있다.
마늘 상인들을 지나 터미널 쪽으로 가다 보면 민물고기를 잡아다 파는 가게가 보인다. 부부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다슬기와 우렁이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만경강에서 잡아 온 것인데 우렁이와 다슬기가 마구 섞여 있어 분리하는 일이라고 했다. 남편은 만경강 어부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강에서 민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에게도 어부 자격을 주고 아무나 잡을 수 없게 한다. 남획으로 인해 자원이 고갈되는 것을 막고, 강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허락받고 사진을 찍는 우리에게 다슬기로 만든 엑기스를 한 잔씩 주신다. 차가운 것을 마셨는데도 비리지 않고 진한 다슬기맛이 난다. 감사하다.
마늘을 파는 상인께 오일장이 왜 이렇게 작고 한산한지 여쭈었다. 고산오일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시작된 역사가 깊은 장이라고 했다. 예전엔 근처에서 모두 장을 보러오는 아주 큰 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순천처럼 윗장과 아랫장으로 나뉘어 설 정도였다고 하고, 전주에서도 장을 보러올 정도였다는데 안타깝게 지금은 곧 사라질 것 같은 규모로만 보인다. 마늘과 곶감의 큰 산지라 마늘 수확 무렵과 곶감이 나올 때는 제법 북적거린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봉동과 고산이 생강의 산지로 유명하니 생강 수확철에 꼭 다시 와봐야지 하는 계획도 세워본다.
파출소 입구에 판을 벌인 상인이 있다. 파출소에서 뭐라 하지 않는 모양이다. 편의점 앞에도 판을 벌이고 앉아 있는 상인이 있다. 터미널 입구에도 있고, 약국들 앞에도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기는 하다. 주민들 간 도타운 정이 만든 풍경이겠다.
볼거리 별로 없는 도로변에 마구잡이로 서는 오일장 구경을 하니 많이 피곤하다.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에 햇빛을 가릴 게 하나도 없는 곳이라 더 그렇다. 시원한 곳에 앉아 차라도 마시고 싶어 가는 길에 올해 처음으로 옥수수를 만났다. 껍질과 수염을 보니 아침에 수확해 나온 것이 분명하다. 껍질과 수염을 모두 제거하고 깨끗하게 다듬은 옥수수를 쪄서 판다. 껍질 한 겹을 달아서 찌면 더 맛있는데 먹는 사람들 편의를 봐서 그런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한 봉지 사서 먹어본다. 인위적인 단맛이 없는 옥수수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알 수가 없다. 왜 옥수수 자체의 맛을 즐기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오일장 투어를 마치고 근처의 로컬푸드 매장엘 간다. 우리나라 최초의 로컬푸드 매장이다. 넓고 쾌적하고 없는 게 없이 다 있다. 가격도 전국 그 어느 매장보다 저렴하다. 사람들이 이제 오일장에 가지 않는 이유가 이곳에 있다. 상설시장 안에 신선한 식재료를 팔지 않는 이유도 이 매장에 있다. 고산미소시장 입구에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햇볕이 따가운 거리에 차양막 하나 없는 곳에 앉아 계신 농부 상인들이 이상하게 목에 걸린다.
신도시에 늘어선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부모님을 보는 느낌이다. 차도 없고 디지털 문화는 하나도 모르기에 로컬푸드매장 상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비애를 같이 느낀다. 과거의 영화는 어디로 가고, 이제 허리 굽은 노인들만 남아 눈, 비, 바람을 다 몸으로 받고 앉아 계신 고산오일장이라니….
고산미소시장 주변에 맛있는 한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정육식당이 크게 있다. 근처에 홍어탕을 맛있게 파는 백반집도 있다. 조금만 움직이면 정말 맛있는 들깨사워도우를 파는 빵집도 있다. 요거트 맛집도 있고 보이차를 즐길 찻집도 있다. 운이 좋으면 귀촌해 즐겁게 사는 주민들과 만나지기도 한다. 쇠락해가는 오일장을 지키는 일은 우리가 자주 찾아가 이용하는 것이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