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조상들이 지켜낸 유서 깊은 고향 땅에서, 이제는 우리가 ‘농촌 공동체 활성화’라는 새로운 사명을 일구어 간다.”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목숨 걸고 수습한 충신 엄흥도 선생의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서 생을 마감한 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내려졌지만 엄흥도는 위험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이후 후손들은 오랜 세월 숨어 지내다 1560년 4세손 엄한의가 현재의 경북 문경시 산양면 위만마을에 터를 잡으며 집성촌을 이루게 됐다.
충절의 역사를 품은 이 마을이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겨울이면 수천 명이 찾는 얼음썰매장이 생겨났고, ‘엄씨愛마을’이라는 브랜드도 탄생했다. 한때 예천과 문경의 경계에 놓여 변방으로 여겨졌던 작은 마을이 농촌 공동체 활성화의 모범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위만마을 청년회장 엄장수(49)씨가 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 곁에서 부모가 일군 농지를 지키며,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에 다시 사람과 웃음을 불러 모으고 있는 그를 지난 5일 엄흥도기념공원에서 만났다.
하루 700명 인파…기분 좋은 소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순우리말로 ‘우마이’ 마을로도 불리는 위만마을은, 100여명의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거나 인근 시내에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 엄씨 집성촌이다. 세대마다 항렬로 연결돼 있어 마흔아홉의 엄장수 청년회장이 30대 청년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정겨운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대외 활동이 거의 없던 조용한 마을이었지만, 지난 2022년 청년회가 결성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위만마을에서 나고 자란 엄 회장은 한 토건회사에서 안전관리사로 10년간 근무하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계기로 2015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엄 회장을 비롯해 마을 출신 청년들이 다양한 이유로 하나, 둘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20명 남짓 되자 청년회를 꾸리고, ‘마을을 알려보자’라는 마음이 모였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로 읍·면 단위 청년회조차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에, 단일 자연부락 30~50대 주민 20여명이 청년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위만마을은 원래도 겨울이면 논에 물을 대 얼음썰매장을 만들어 동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조성해왔다. 이를 문경시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홍보하고, 2022년부터 외부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엄 회장은 “소문이 나면서 하루 최고 700명까지 외지인들이 밀려들었다. 처음엔 교통 통제도 안 되고 화장실도 없어서 청년 회원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썰매장을 관리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마을 사업을 처음 해보는 터라 기존대로 논에 물만 얼려 개방하는 정도로 생각했던 청년 회원들은 미숙한 사업 방식에 고생을 많이 했다. 조용하던 마을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나자 어르신들이 구경을 나올 정도였다.
문경시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한 각 기관들은 모처럼 지역에 활기가 돌자 컵라면을 후원하는 등 지원했다. 9000여개 넘는 컵라면이 후원품으로 들어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컵라면’은 지역 마트, 슈퍼에서 동이 날 정도였다. 마을 어르신들도 어묵을 무료로 나눠주기 위해, 어묵꼬치를 쉴 새 없이 만들어냈다.
한 어르신은 “내 평생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며 마을의 들썩임을 반겼다. 엄경일 이장, 부녀회, 청년회 등의 ‘마을 알리기’를 목적으로 한 봉사와 헌신이 일궈낸 기분 좋은 소란이었다.
투잡·쓰리잡에서 ‘전업농’으로
엄 회장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농사일이 전혀 낯설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직장 생활을 할 때까지 주말마다 틈틈이 부모님의 수도작(벼농사)과 밭농사를 도와왔기 때문이다. 정미소를 운영하며 온갖 농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다재다능한 삼촌도 그에게는 훌륭한 롤모델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기계보다는 사람 손이 더 많이 가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셨고, 그만큼 농사일을 깐깐하게 챙기셨다. 평생 아버지 말씀에 토 한 번 달아본 적 없던 엄 회장은 묵묵히 그 방식을 따랐지만, 육체적 고단함이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그는 포크레인 자격증을 취득한 뒤, 아버지 눈을 피해 장비로 밭갈이를 해버렸다. 다음 날 아침 밭을 본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엄 회장은 이를 계기로 농기계를 전면 도입하며 기계화 농업으로 빠르게 전환, 재배 면적을 넓혀나갔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정권과 정책에 따라 벼 수매 가격이 출렁이고 여전히 턱없이 낮은 수매가 탓에 농민의 삶은 늘 녹록지 않았다. 초기에는 생계를 위해 보험 영업과 토목 현장 일을 병행하는 ‘투잡, 쓰리잡’의 고단한 생활을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을 꾸리고 세 자녀를 기르며 4만평 대지에서 벼, 단호박, 콩, 고추 등을 재배하는 안정적인 전업농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농업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자산이자 가장 큰 자부심이다.
엄 회장은 “앞으로 인구는 줄어들고 식량 위기가 심화할 것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농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며 분명히 가치가 있다. 막내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농고와 농대를 거쳐 가업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농업을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기계화와 첨단화가 더 발전한다면 다음 세대 농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편해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엄씨愛마을’, 지속가능한 농촌을 그리다
마을의 활력은 겨울철 썰매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경북도 ‘소규모 마을 활성화’ 공모사업을 통해 1억원의 예산을 확보, ‘엄씨愛마을’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고 마을 사업을 벌였다. 크게 해설, 놀이, 체험으로 나눠, 어르신들은 충신 엄흥도의 역사와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설사가 됐고, 부녀회는 전통 장 담그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기에 얼음 위 팽이치기 등 전통놀이 체험을 더해 가족 단위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지난해에만 3~4회 정도 진행해 회당 30여명의 전국 각지 관광객들이 마을을 다녀갔다.
집성촌의 특성을 유지하며 수십 년간 이어오는 ‘동신제’와 ‘향사’도 청년들이 앞장서서 전승해 나가고 있다. 동신제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동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향사는 학문과 덕행이 높은 성현이나 문중의 훌륭한 조상을 기리기 위해 사당이나 서원에서 지내는 제사다. 매년 4월 충의공 엄흥도를 기리기 위한 서원인 ‘상의재’ 제일 안쪽 엄흥도 가묘에서 제사를 봉행한다. 청년회는 정기적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짜장면·탕수육 데이’ 등을 열며 공동체의 끈을 더욱 단단히 조였다.
이러한 청년회의 헌신과 마을 주민들의 화합은 더 큰 기적으로 이어졌다. 위만마을은 최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주관하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에 선정돼 약 24억원 규모의 마을 조성 사업 예산을 확보했다. 붕괴 위험 지역 공사와 헌 집 정비, 담벼락 정비 등 낙후된 마을 환경을 전면 새단장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장과 청년회, 주민들은 향후 이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주민설명회를 통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예정이다.
농촌 소멸 막는 힘 “주민 화합”
단일 행정 부락에서 청년 회원 20명이 주축이 돼 움직이는 조직은 전국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엄 회장은 이 놀라운 결속력의 비결을 오직 ‘화합과 양보’라고 말한다.
엄 회장은 “회사에 다닐 때는 사수가 저보고 ‘싸움닭이 되지 마라’고 할 정도로 한 성격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와 좋은 풍경을 보고 넉넉한 인심을 겪으며 성격이 느긋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회장으로서 회원들의 불평불만을 들어주고 다독이며 청년회를 꾸려나간다. 마을 행사로 고생한 뒤에는 다 같이 모여 훌훌 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 의지하는 게 전부다.
대단할 것도 없는 사람을 인터뷰하러 왔다며 내내 수줍은 미소를 보이던 그에게, 귀농·귀촌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농촌 청년 지도자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엄 회장은 “구체적인 계획 없이 지자체 보조금 등을 바라보고 연고도 없이 들어오기보다, 자신만의 단단한 기반과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리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인구 소멸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청년회 회원들도 결국 나이를 먹어갈 것을 예견하면서도, 청년회가 존재하는 그날까지는 마을을 위해 열심히 뛸 것이라는 엄 회장. 그는 농사짓는 전국 모든 농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빌었다.
단종을 향한 충절의 역사를 간직한 문경 위만마을. 조상들이 지켜온 고향을 후손들이 공동체의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변방으로 불리던 작은 농촌마을의 변화는 농촌 소멸 시대를 살아가는 지역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 ‘農과 함께’는 대한민국의 살맛 나는 농업·농촌을 위해, 이 땅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힘차게 뛰고 있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 심도있게 담아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