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장 전경. 상인들을 위한 시설물이 없어서 장날마다 천막과 파라솔들이 알록달록 꽃으로 피어난다.경남 진해 경화동은 아주 오래전 내가 겨우 달리기를 시작했을 무렵의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군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 다니며 셋방살이를 하던 때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일자집 가옥 구조와 나무틀로 짜여 유리를 지탱하는 창문을 달고 있던 유치원 복도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유치원이 아직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설레며 찾아간 경화오일장은 그 시절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살고 싶은 동네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잘 몰라서 입구 아파트 단지 안 상가에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좌우로 일상적으로 들락거릴 수 있는 가게들이 있는 가운데 자동찻길을 막아 장이 서는 형태다. 도깨비시장처럼 섰다가 사라지는 형태라 색색의 천막이나 파라솔이 늘어선 모습도 장관이다.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름나물, 곰취나물이 보인다. 지금 사면 안 된다. 다시 올라가는 길에 사야 돌아다닐 때 짐도 안 되고 덜 번잡스럽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마늘쫑(마늘종)이 너무 좋다며 사고 싶어라 한다. 그러다 내려가서 더 좋은 걸 만나면 어쩌지 하면서 그냥 지나친다.
아침 일찍 출발해 아직 빈속이라, 사진작가를 기다리는 동안 막 튀겨낸 어묵을 한 장씩 사서 입에 물고는 맛있다며 좋아했다. 어묵 만들어 파는 상인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어묵이라면서 엄청난 자부심을 보인다. 안 사고 안 먹으면 당신들 손해지 뭐, 하는 분위기다. 비록 장을 옮겨 다니며 장사를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이 정도 자부심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사 먹는 사람도 안심하고 믿을 수 있어 좋다.
남쪽의 제철 토마토가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때다. 컨테이너 박스로 들고 나온 토마토가 시선을 끈다. 사고 싶은데 무거워서 올라가다 사기로 한다. 오이도 좋고, 완두콩도 좋다. 완두콩 사다가 날마다 밥해 먹고 죽도 끓이고 싶다. 아니 깍지째 삶아 일삼아 앉아 까먹으며 술 한잔해도 좋겠다. 음식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장 보는 일 정말 좋아한다. 아니, 장을 보면서 조리해 맛있게 먹을 얘기하는 걸 더 좋아한다.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좋아한다. 만나는 모든 식재료를 주제로 떠들다 큰 소리로 웃으며 걷는 우리가 사람들 눈에 거슬릴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하면서 장터 안 국밥집을 찾는다. 오래된 국밥집이 몇 곳 있고 죽·국수·김밥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따로 있다. 입구에 있는 국수집은 손님들이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늙은 호박으로 끓인 호박죽도 시선을 끈다. 우리는 국밥집에 가서 국밥을 먹고, 국밥을 싫어하는 사람은 옆집에서 국수와 김밥을 시켜 같이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장터길을 걸었다.
바닥에 얼음을 깐 매대에 삶은 문어와 소라를 얹고 파는 상인을 만났다. 삶기 귀찮아서 안 사 먹는 사람들 살기 좋은 세상이다. 집에 가져가 썰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해서 판다. 새벽에 막 잡아서 싱싱한 상태일 때 삶아 온 것이라 살도 탱글탱글하고 좋아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셔서 지나쳐왔지만 싼 가격도 맘에 들었던 해산물이었다. 산골에 사는 사람으로 바다에 면한 지역의 가장 부러운 것이 싱싱한 해산물인데, 진해가 바로 그런 곳이다.
폐쇄된 철길을 만나 장터가 이게 다인가 싶으면 그 철길을 따라 왼쪽으로 다시 길게 장이 늘어서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장인가 하는 마음이 생긴다. ‘덜 전문가’들이 자신이 생산한 먹거리를 들고나온 것 같아서다. 막아놓은 철길을 터서 길로 쓰는 곳을 따라 돌면서 계속 디귿자 형태로 장이 선다.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조금씩 놓고 앉아 있는, 장터의 연장이다. 병원 건물 앞마당에도 전을 펴고 있다. 아마 병원 측의 양해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오일장이다.
텃밭에서 나올법한 나물 20가지를 펼쳐놓고 있는 아주머니를 지나고, 푸른 제피 열매 한 바구니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지났다. 제피는 한 바구니 샀다. 향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다. 경화오일장 구석구석을 한 바퀴 다 돌고는 내려가던 길을 거슬러 올라 차로 가는 중간에 곰취 한 바가지와 토마토 3kg을 샀다. 더 사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내 일정이 돌아가서 조리를 해 먹기도 그렇고, 또 저장을 해두자니 애매해서 참고 지나쳤다. 같이 갔던 사람들에게 언제 꼭 다시 오자며 손가락을 걸 뻔했다. 경화오일장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