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하림 기자]
국가중요농업유산은 농업·농촌의 미래를 위해 보전할 가치가 있는 각종 유무형 농업자원을 국가가 지정한 것으로, 선조들이 과거부터 이어온 전통 농사 활동 및 농촌 경관, 토지이용체계 등이 지정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시작했다. 2026년 현재, 우리나라엔 총 20가지의 국가중요농업유산(농업유산)이 존재한다. 본지는 향후 매월 1회씩 국내 농업유산들을 소개하며 선조들이 농사 과정에서 어떤 지혜를 발휘해 왔는지, 농업유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① 제주 밭담
② 청산도 구들장논
청산도는 전남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닌 듯 섬 대부분은 푸르른 산이다. 산세는 아름다우나, 농사짓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청산도 땅은 전반적으로 경사지고 돌이 많으며 물 빠짐이 심하다.
우리 정부가 정한 제1호 농업유산인 청산도 구들장논은 이런 환경에서 생겨났다. 공도(空島) 정책으로 오랜 세월 무인도였던 이 섬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 다시 주민이 살기 시작했다. 이후 점차 인구가 늘었으나 경작지는 부족했다. 그래서 17세기부터 청산도 사람들은 산비탈에 구들장논이라는 독특한 다랑논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구들장논은 논에 온돌 구조를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하부석축을 쌓고, 아궁이와 비슷한 형태의 통수로를 만들며, 그 위에 흙을 깔았다. 또 논을 계단처럼 배치하고 통수로를 따라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농업용수가 흘러가도록 했다. 논의 물 빠짐을 막고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구들장논은 십수대에 걸쳐 대물림됐다.
청산도의 농업 환경은 마을 공동체성을 강화했다. 어느 집 구들장논이 망가지면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수리했다. 또 공동체 내에서 합의된 규칙 하에 농업용수를 관리했다. 가뭄이 들면 아랫논은 버리고 윗논에만 물을 대는 식이었다. 그 대신 농업용수를 관리하는 ‘보작인’ 역할은 제일 아랫논 주인이 맡았다. 더불어 이웃집으로부터 소를 빌리고 그 집 논밭에서 일해서 갚는 ‘소언두’라는 품앗이 문화도 발달했다.
끈끈한 공동체성은 생활 문화에서도 드러났다. 청산도에선 마을 남자 어르신을 ‘오촌님’, 여자 어르신을 ‘숙모님’이라고 부른다. 어느 집이 제사를 치르고 나면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그곳에 찾아가 식사하는 문화도 있다. 청산도에 시집와 30여년을 살아온 김미경 청산도구들장논보존협의회 사무국장은 “늦잠 자고 싶은 날에도 숙모님들이 ‘우리 집 제사 치렀으니 밥 먹으러 오라’며 새벽부터 전화하더라”며 웃었다. 혹시 못 온 사람이 있더라도 바구니에 음식을 넣어 가져다줬다.
하지만 이런 농업 전통도, 생활 문화도 이젠 옛일이 됐다. 청산도도 여느 농어촌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 문제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청산면 상서리에서 13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인 박근호 청산도구들장논보존협의회장(70)이 회고하길, 그가 어렸을 적 상서리에는 700여명이 살았으나 지금은 고작 4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박 회장은 “청산도는 예로부터 똥장군을 지고 가는 농부도 시를 읊는 섬이라고 할 만큼 교육열이 높았다. 그래서인지 1970~1980년대에 교육 때문에 다 섬을 나가 버렸다”고 말했다.
구들장논의 명맥도 끊길 위기다. 구들장논은 1960년대까지는 새로 짓기도 했으나, 이후로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져 점점 묵답이 늘어나고 있다. 박 회장에게도 7명의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구들장논에서 농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은 그가 유일하다. 박 회장은 청산도 구들장논 중 3분의 2가 묵답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구들장논에서 농사짓는 주민들이 모인 청산도구들장논보존협의회도 회원 23명 중 15명이 70대 이상일 만큼 청산도의 고령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사유재산이니 알아서 농사지으라고 할 거면 뭐하러 농업유산으로 지정했나. 어르신들은 시간이 지나면 아프거나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그분들께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정부가 묵답을 매입하고 관리를 위탁하거나, 외지에서 월급 농부를 들여오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