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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농민 요구도 통역 되나요?” 현장과 제도 잇는 농업 연구자
🚜 Farming

“농민 요구도 통역 되나요?” 현장과 제도 잇는 농업 연구자

NewsMay 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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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녀름) 소장은 자신의 삶을 설명하며 반복해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면,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공부와 농업 현장을 놓지 않았던 한 사람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했고, 뒤늦게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연구를 이어갔고,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하다 경력 단절도 겪었다. 그렇게 돌아 돌아 도착한 곳이 농업이었다.“농민운동과 정책연구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 이 소장은 자신을 이렇게

[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녀름) 소장은 자신의 삶을 설명하며 반복해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면,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공부와 농업 현장을 놓지 않았던 한 사람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했고, 뒤늦게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연구를 이어갔고,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하다 경력 단절도 겪었다. 그렇게 돌아 돌아 도착한 곳이 농업이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만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은 한 토론회에서 ‘농촌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의 의료공백과 고통’에 대한 주제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여성농민과 담소를 나누던 이 소장이 밝게 미소짓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만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은 한 토론회에서 ‘농촌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의 의료공백과 고통’에 대한 주제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여성농민과 담소를 나누던 이 소장이 밝게 미소짓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운동과 정책연구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 이 소장은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현장의 언어를 정책의 언어로 바꾸고, 정책의 논리를 다시 현장에 설명하는 사람으로서 농민과 함께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고민해 왔다.

‘녀름’은 농민 권리 실현과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활동하는 독자적인 민간 연구소다. 2010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정부나 기업 지원 대신 현장 농민들과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녀름’은 농사, 열매, 수확을 뜻하는 우리말로, 농민들의 땀방울이 풍성한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농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원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직장생활을 하며 대학을 다녔죠. 그러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구의 한 섬유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대학을 다녔다. 이후 환경교육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며 서울에 정착했다. 현실적으로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환경교육 분야였다.

28살에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교수와 동료들을 만나며 처음으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조교 일을 하며 학비를 충당했고, 이후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서 연구원 생활도 시작했다.

하지만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 둘째 출산 뒤에 육아휴직을 선택하면서 사실상 직장을 떠나야 했다. 다시 연구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두려웠던 시기,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왔다.

2013년, 배우자의 권유로 국회 농업정책 전문위원 공모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농업과 특별한 연고도, 전문성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배우자의 권유 끝에 지원했고, 농업정책 전문위원으로 약 1년 6개월간 활동하게 됐다.

농민에게 반하다

국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농민들을 가까이서 만났다. 2014년은 쌀 시장 개방과 농지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활동가들과 마주한 경험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무 당당했어요. 쌀 시장 개방 반대 투쟁 당시 끌려나가면서도 자신들의 요구를 끝까지 말하더라고요.”

그는 그 시간을 “농민들에게 반하게 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농지법 개정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됐다. 당시 농업법인의 농업 참여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이 논쟁이 됐고, 실제 농민 비율이 낮은 법인도 농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국회에서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경자유전이 단순한 토지 소유 원칙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경자유전은 단순히 땅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농업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식량을 누가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원칙이었어요.”

지난 3월 20일 강원 홍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홍천군주민수당 도입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수미 소장이 발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3월 20일 강원 홍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홍천군주민수당 도입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수미 소장이 발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우리의 전문가는 이수미”

이후 2014년 말, 그는 ‘녀름’에 합류했다. 그러나 농민운동 현장과 정책 연구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박근혜정부 시기 농민 투쟁은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줬다.

“서울대병원 앞 촛불집회에도 가고 장례식장도 지켰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됐어요.”

답은 오히려 농민들에게서 돌아왔다. 전농과 전여농 활동가들은 그에게 “매일 현장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정책과 연구로 힘이 돼달라”고 말했다. 그 말은 이 소장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자신의 박사학위 역시 농민들 덕분에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7년 전국쌀생산자협회가 일본 연수를 추진하던 당시, 협회는 연수에 함께할 전문가로 이 소장을 정부에 추천했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는 “박사도 아닌데 왜 전문가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농민들은 “우리의 전문가는 이수미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함께 연수를 추진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마흔둘에 시작한 박사과정은 쉽지 않았다. 교육학을 전공했던 그는 농업경제학을 새롭게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끝내 학위를 마쳤고, 지금은 농민수당과 농촌 복지, 먹거리 정책 등 다양한 농업 의제를 연구하고 있다. 일정은 늘 빽빽하다. 농민 간담회, 정부 정책 토론회, 대학 강단 등 농업 전문가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이 소장을 찾는다.

농정의 핵심은 ‘가격 보장’

이 소장은 지금 농업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농산물 가격 보장’을 꼽았다.

“결국 농민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최소한 생산비라도 보장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농업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 등 여러 제도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핵심 문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국내 농업을 위협하는 가장 큰 구조적 문제 중 하나로 수입농산물 중심 정책을 지적했다.

“저렴하거나 무관세로 들어오는 수입 농산물이 많아질수록 국내 농산물은 소비자 선택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요.”

그는 농산물 가격 보장의 핵심은 단순한 정책 부재가 아니라 수입 의존 구조의 문제라고 봤다. 농민수당이나 각종 지원정책 이전에, 우선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이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수당은 농민의 자긍심

이수미 소장은 농민수당에 대해 “농민수당은 농민의 자긍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민으로 살아온 삶을 사회가 보상하고, ‘당신은 중요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이수미 소장은 농민수당에 대해 “농민수당은 농민의 자긍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민으로 살아온 삶을 사회가 보상하고, ‘당신은 중요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그가 농업 정책 연구를 하며 가장 의미 있었던 성과로 꼽는 것은 ‘농민수당’이다. 그는 농민수당을 처음 연구했던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정책화 과정에도 참여했다. 그에게 농민수당의 의미를 물었다.

“농민수당은 농민의 자긍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민으로 살아온 삶을 사회가 보상하고, ‘당신은 중요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정책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낮은 가격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농지를 지키고 지역을 유지해 온 농민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결국 농정의 중심축은 국가가 철학을 갖고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농민들 사이에서 가장 관심이 큰 정책으로는 농어촌기본소득을 꼽았다. 그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농어촌기본소득은 중요한 정책 실험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동시에 농어촌기본소득 대상이 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농민수당 확대 논의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소외 없는 농업 꿈꿔

이 소장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분야는 여성농민과 농업사회안전망 문제다.

여성농민은 농업 안에서도 더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했다. 여성농민은 돌봄과 육아, 농업 생산과 가공, 공동체 노동까지 감당하며 지역과 농업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법적·직업적 지위 인정’을 꼽았다.

최근 공동경영주 제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며, 여성농민의 지위가 명확히 인정돼야 다른 정책들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농업 분야에는 농작물 재해보험, 농업인 안전보험 등 다양한 정책보험이 존재하지만, 가입 여부와 정책 대상에 따라 보호받는 사람이 크게 갈린다고 지적했다.

특히 앞으로 정부 정책이 규모화·경쟁력 강화 중심으로 이동할 경우 영세농과 고령농은 더 쉽게 배제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농업도 보편적 사회안전망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사람

인터뷰에서 그는 여러 번 배우자 이야기를 꺼냈다. 삶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와서다. 그는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마음도, KEI와 국회 지원도 모두 배우자의 응원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배우자뿐만이 아니다. 좋은 가르침을 줬던 대학원 교수와 학우들, 녀름을 만들어온 역대 소장들과 동료, 그리고 무엇보다 농민들. 전농 의장 중 한 분은 늘 가방에 녀름 팸플릿을 넣고 다니며 농민운동에서 연구소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또 다른 의장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서에 후원해야 할 단체로 녀름을 적었다. 자신을 이끌어 준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던 그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결국 저는 사람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지금의 자리가 결코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귀인들의 정성과 진심이 모여 일궈낸 결과임을 온몸으로 기억하며, 오늘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이 소장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