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인터뷰 ‘農과 함께’는 대한민국의 살맛 나는 농업·농촌을 위해, 이 땅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힘차게 뛰고 있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 심도있게 담아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한때 세계 무대를 누비던 펜싱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신미(44)씨. 지금은 전북 고창의 한 농촌 마을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전통주를 빚으며 살아가고 있다.
선수 시절의 치열함, 은퇴 이후 세계를 떠돌던 시간, 그리고 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도착한 귀농의 삶까지.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직’이나 ‘정착’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이어온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펜싱, 늦게 시작했지만 최고의 자리에
경북 포항이 고향인 신미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펜싱을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육상 선수로 전국대회 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체육고 진학을 계기로 펜싱을 처음 접하고 완전히 매료됐다.
“실내에서 하얀 도복 입고 검을 다루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바로 반했죠.”
늦은 출발이었지만 좋은 스승과 무지막지한 훈련 덕분에 성장 속도는 빨랐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여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 획득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국내 여자 사브르 등록선수는 2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펜싱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사상 최초 아시안게임 여자 펜싱 메달이었다.
이후 2007년 태국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 등 1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그에게 더 강하게 남은 것은 메달보다 운동계의 어두운 현실이었다.
“운동계가 너무 폐쇄적이었어요. 비리나 불공정한 일들을 계속 보게 되니까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특히 펜싱은 동시타가 나오면 판정 권한이 심판에게 있어요. 심판과의 관계가 중요한, 굉장히 정치적인 종목이죠.”
결국 세계 랭킹 8위였던 2010년, 한창 시절에 그는 은퇴를 선택했다.
“그 환경에서 계속 버티는 게 저한테는 더 힘들었어요.”
은퇴 후 프랑스에서 알제리까지
은퇴 후 그의 삶은 한동안 ‘이동’ 그 자체였다. 프랑스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스위스에서 국제펜싱연맹 인턴으로 2년간 근무했고, 싱가포르·알제리·미국 등을 오가며 국제대회 운영, 개발도상국 선수 지원, 캠프 운영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특히 아프리카 선수들을 지원하는 일은 큰 보람이었다.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일을 했지만 그의 선택에는 일관된 방향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펜싱을 가르치는 일 자체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펜싱 소외국 아이들을 지원하고 교육하는 일에는 보람을 느꼈다.
정착과 함께 여성농민으로 살다
그는 코로나를 계기로 처음으로 정착을 생각했다.
“계속 떠돌다가 2020년 귀국하면서 ‘이제는 한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선수로 치열했던 유년과 20대를 보낸 덕에 느림의 미학이 있는 시골에 살고 싶었다. 전남 고흥 등 따뜻한 남쪽 지방을 꿈꾸며 귀농 교육을 2년간 받았지만, 농사보다는 한적한 삶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삶의 방향은 예상치 못한 인연을 통해 구체화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한 사람이 소개한 역사기행 모임 ‘진달래산천’. 이 모임에 참여하던 중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애인을 만났다. 그렇게 2022년 봄, 여유로운 삶과 애인이 있는 전북 고창에 귀농했다.
농민으로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인 애인은 농사짓는 일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의 순수한 태도에 신미씨는 깊은 존중과 감동을 받았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이 일을 계속 할 거야?”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할 수밖에 없어.”
애인의 짧은 대답은 깊은 울림을 줬고, 신미씨는 자연스레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청년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사람을 돕는 일을 향했던 걸음이 삶의 주체로서 세상을 바꾸고, 내가 처한 환경을 능동적으로 꾸려나가는 길로 한층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신미씨는 도시와 농촌, 기존 전여농 회원과 신규 청년여농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로 안전 문제와 생태농을 꼽았다. 연고 없는 낯선 지역에 정착하려면 기본적인 안전이 확보돼야 하고, 젊은 층은 농사 자체보다는 기후와 환경을 바탕으로 한 자급자족적 생태농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비혼주의자인 신미씨 역시 애인과 독립된 개별로서 함께 사는 방식을 지향하지만, 시골에서는 단순히 ‘누구 집 며느리’나 ‘형수님’으로 불리는 문화에 불편함을 느꼈다.
또 농민으로서 토종 종자에도 관심이 높다. 전여농 활동을 하며 다국적 기업이 종자 시장을 독점하고, 농민들이 종자 회사에 종속되는 현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매년 새로 사야 하는 기업의 종자와 달리, 씨를 받아 다시 심을 수 있는 ‘토종’은 농민의 자립이자 식량 주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관습에서부터 농촌·농업·농민의 삶과 이를 둘러싼 사회 문제까지 연결하며, 지속 가능한 농촌을 만들어가는 꿈을 꾸고 있다.
돌봄과 전통주 그리고 지역살이
신미씨는 고창에서 교육공동체 ‘십시일반’의 일원으로 돌봄 노동을 하는 등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시작은 펜싱 재능기부였고, 도시에서 배운 코딩을 활용해 방과 후 수업도 진행했다. 현재는 학교밖 늘봄 전담강사로, 마을 도서관 운영을 함께하며 아이들의 일상을 책임지고 있다. 농사일, 맞벌이 등으로 아이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 자연스럽게 ‘그럼 우리가 돌보자’가 됐다.
그의 삶의 또 다른 중심은 전통주 빚기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집에서 만든 술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인의 술을 맛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쌀과 누룩으로 만든 술에서 과일 향이 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저도 우리 땅에서 자란 토종 재료로 빚은 좋은 술을 만들고 싶어요.”
누룩과 고문헌을 공부하며 몰두했고, 사계절을 테마로 한 ‘사시주’로 전라북도 청년창업 시제품 제작 경진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사시주는 봄바람, 여름구름, 가을노을, 겨울여울 등 4가지 계절별 테마로 구성된 지역 토종 재료를 활용한 술이다.
이런 성과가 있는 반면, 녹록지 않은 현실도 있다. 양조장을 짓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지만 땅을 마련한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는 농촌에 다양한 지원 정책이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양조장을 짓기 위한 땅은 마련했지만, 지원 제도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청년후계농 선정으로 연금리 1.5% 최대 5억원 대출이 가능하지만,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 가공시설을 위한 대출에는 담보가 필요해서 활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담당 공무원들이 자주 바뀌어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원제도 간 상충 문제를 문의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결국 농림축산식품부에까지 민원을 넣어 해결할 수 있었다.
지역 특유의 ‘알음알음’ 방식도 걸림돌이었다. 공무원이 잘 아는 지역민을 위한 지원사업은 즉시 만들어지지만, 연고 없는 귀농·귀촌인들은 민원 처리 하나에도 진이 빠질 정도였다.
그는 거창한 정책보다도, 기존 제도가 제대로만 운용돼도 청년들이 농촌에 더 쉽게 들어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회는 분명 존재하지만, 활용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삶을 선택합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지금의 삶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신미씨에게 시골살이는 절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일이다.
“‘지금쯤 무슨 무슨 야생화 필 때 되지 않았어요?’ ‘재두루미 어디쯤 있나 전화해봐요’하며, 애인과 함께 계절마다 다른 자연을 만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에요.”
소소한 일상과 농민운동 이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직접 만든 술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