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서천은 서천, 한산, 비인 3군을 통합하여 서천군으로 개칭한 곳이라고 한다. 모시와 소곡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한산은 이제 모시와 술로만 남아있다. 모시가 유명한 지역을 포함한 곳이라 그런지 모시떡이 특산품으로 여기저기서 팔리고 있다. 김도 원초의 맛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라 특산품 가게가 있을 정도다. 마량포구, 홍원항 같은 바다를 품고 있어 수산물을 특화한 시장도 있다. 다른 바닷가 지역의 수산물시장과 흡사한 모양이지만 따로 이름도 붙어있다.
수산물특화시장이라고 이름 붙은 가건물에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면 크고 작은 건물들을 따라 골목 안까지 넓게 오일장이 선다. 부지런하게 장을 보고 돌아가시는 어른들이 정류장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거나 몸을 기대는 유모차를 밀면서 아직 장터를 천천히 돌고 계신 어른들도 보인다. 물론 아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다. 날이 풀려서인지 장터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이 참 좋다.
그 어느 장터보다도 조그만 보따리를 이고 지고 나왔을 노인들이 정말 많은 장터다. 전국의 장터마다 온갖 물건들을 싣고 다니는 전문적인 상인들이 여기에도 있지만, 직접 농사짓고 바다에 나가 채취한 것을 들고 나오는 어른들이 많아서 좋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어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눈이 마주치면 사라고 권하는 물건들을 죄다 장바구니에 담는 나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타박에 주눅이 들곤 한다.
서천오일장엔 냉이와 달래, 머위, 미나리, 쑥, 쪽파, 풋마늘, 움파 등 들에서 나오는 채소들이 지천으로 나와 있다. 뭘 사도 ‘제철’인데다 신선하고 좋아서 맛이 없을 수 없다. 미나리의 줄기가 어찌나 실한지 한 단 사다가 데쳐 무치면 정말 맛있겠다며 연신 먹는 얘기만 하면서 장을 돈다. 냉이와 달래를 넉넉히 산다. 머위도 사고 미나리도 산다. 동료들 얼굴을 애써 외면하면서 돌아가 맛있게 먹여줄게 하는 마음으로 자꾸 돈을 쓴다. 달래는 한 바구니에 2000원이나 3000원, 냉이도 비슷하고 머위가 좀 비싸다. 이것저것 챙겨 사봐야 마트나 백화점 식품부 가격에 비하면 턱없이 싸고 푸짐하다. 장터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그래도 농협마트보다 싸다. 많이 산 물건에 대한 변명이지만 위안이 된다. 장바구니는 점점 무거워진다.
서천의 오일장엔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엔 주꾸미가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보통의 장에서는 그저 몇몇 상인의 그릇 안에서만 밖을 향해 끊임없이 탈출하려는 녀석들을 만날 수 있지만, 서천에서는 수산물을 취급하는 거의 모든 상인이 주꾸미를 판다. 1kg 단위로 파는데, 싱싱하게 살아있는 녀석들의 머리를 뒤집어 내장을 꺼내 바닷물에 몇 번 헹궈서 포장해준다. 먹고 싶은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수산물특화시장 안에 식당으로 가면 준비해주는 비용을 내고 샤브샤브나 볶음 등을 부탁해 먹을 수 있다. 그도 저도 귀찮은 사람은 식당에 앉아 주문하면 뒷집이나 앞집의 어물전에서 바로 가져다 조리해준다. 어쩌니저쩌니해도 싸지 않다. 1kg에 5만~6만원을 호가한다. 4인 가족이 먹기에 넉넉하지 않은 양이다.
아직은 새조개도 흔하다. 1kg 구입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까준다. 이것도 바닷물에 바락바락 주물러 씻고 봉지에 담아준다. 재미있게도 껍질 안에 들어있는 새조개를 알아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피꼬막보다 큰데, 골이 파여 있고 색은 연한 주황빛이 돈다. 물속에 있는 새조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끔 입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내민다. 까놓은 모양이 새처럼 생겼다고 해 새조개라 부른다. 한자로는 이름이 ‘작합(雀蛤)’이니 참새 모양을 닮은 대합이라서 붙여진 이름이 새조개인가 보다. 싱싱한 것은 회로도 먹지만, 끓는 물에 살짝 익혀서 먹으면 살이 탱글탱글하니 감칠맛이 좋다.
주꾸미와 새조개 모두 봄에 한창 물이 올라 맛있는 미나리나 냉이와 함께 샤브샤브를 해먹던가 탕으로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맛이 좋다. 산란 때문에 금어기가 되기 전 한번 맛보라고 지인들에게 권한다.
지역에 맞게 오일장터에 육류를 이용한 국밥집이 없는 특색도 괜찮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만개한 동백꽃과 함께 펼쳐진 주꾸미 축제를 하고 있어 꽃구경도 하고, 다양한 주꾸미 음식들을 먹을 수 있으니 초봄에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라 마음에 새기고 소곡주도 한 병 사서 귀가를 했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