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유승현 기자]
바야흐로 외국인노동자 10만명 시대.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법무부 등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기준 농업 분야 외국인노동자는 약 10만200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2023년 기준 농업 고용 인력에서 외국인 비중은 64%를 넘는다. 작물재배업은 64.2%, 축산업은 무려 83.9%가 외국인노동자다.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농업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지난 6일 강원 인제에서 만난 네팔 출신 어르준(35)씨와 로게스(31)씨는 한국에 온 지 8년째인 농업 노동자다. 대학 졸업 후 바로 한국행을 택한 두 사람은 “네팔 대학 졸업생의 절반 정도가 돈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간다”며 한국을 비롯해 두바이, 카타르, 말레이시아 등으로 더 나은 임금과 생활을 찾아 떠난다고 말했다. 이어 “카타르나 두바이는 기초 영어만 요구하지만, 한국은 한국어 시험(EPS-TOPIK)을 보고 입국 후에도 더 나은 비자 전환을 위해 5단계 시험을 계속 치러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여러 나라 중에서도 안전한 환경과 임금이 높아 네팔 청년들이 선호하는 국가 중 하나지만, 고용허가제(EPS)에 따른 한국어 능력 시험(EPS-TOPIK) 때문에 입국이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입국했다고 시험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필수 사항은 아니지만 가족 초청이 가능한 체류 기간이 긴 비자로 변경하거나, 정착을 위해 한국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을 이수해야 한다. KIIP는 0~5단계로 구성된다. 기초부터 중급까지 한국어 실력을 쌓고, 마지막 5단계는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등을 배운다.
어르준씨는 KIIP 5단계를 마치고, 인제군 최초로 E-9 비자에서 E-7-4 비자로 전환한 외국인노동자가 됐다. 로게스씨도 4단계를 이수했다. 최대 9년 8개월간 일할 수 있는 E-9 비자와 달리 E-7-4 비자는 가족 초청이 가능하고,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체류 기간이 무제한으로 연장된다.
어르준씨는 미소를 지으며 “이번 비자 승격으로 배우자와 두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올 계획”이라며 “함께 최소 5~10년 더 일하고 돈을 모아 네팔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 정착할 계획은 없냐는 질문에 “사장님(현재 일하고 있는 양돈 농가주)이 한국에 살라고 권유하기도 해 고민 중인데 일단 현재 목표는 집과 차를 살 만큼 돈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작은 농장, 큰 자부심…인구소멸지역 혜택도
두 사람은 현재 일하는 강원 인제 양돈농가에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어르준씨는 경기 평택 양계농가에서 4년 10개월간 근무 후 네팔로 출국했다가 재입국, 인제 양돈농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로게스씨는 인삼(4개월), 버섯(4개월), 양돈(5년) 등 여러 농가를 거쳐 현재 인제 농가에서 1년째 근무 중이다. 인삼, 버섯 농가는 계절을 타 짧게 일했지만, 양돈·양계 등 축산농가는 사계절 내내 근무가 가능해 오래 일할 수 있었다.
로게스씨는 “이전 양돈 농장은 대농으로 분업화돼 단순 업무만 반복하고, 농가주의 지시사항이 많아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에 비해 작은 농장이라 사료 급이·분만·방역·축사 관리 등 전반 업무를 내 농장처럼 운영한다”고 했다. 어르준씨도 이에 동의하며 “농장 전반을 우리가 관리한다. 내가 잘하면 사장님이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번다”고 말했다. 현재 농장주는 업무와 일과에 크게 간섭하지 않고, 이들을 믿고 맡기기 때문에 자율성이 높다.
하지만 일과가 쉽진 않다. 오전 7시 기상, 7시 30분 농장 출근, 사료 주기와 청소, 분뇨 처리 등 반복 작업이 이어진다. 낮 12~2시 점심식사와 휴식 후 오후 업무가 다시 시작된다. 돼지 분만일이나 매주 돌아오는 백신 접종일, 매월 3~4일 정도의 돼지 출하일 등에는 밤낮없이 일해야 한다.
수년간 경험으로 돼지 상태만 보고도 해야 할 일을 척척 수행하는 베테랑이 됐지만, 초반에는 누구나 그렇듯 어려움을 겪었다. 분만이 원활하지 않은 새끼 돼지를 손으로 꺼내거나, 200kg에 달하는 돼지를 둘이서 옮기는 등 정신·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 많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새끼 돼지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농장에 대한 자부심과 높은 주인 의식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또 다른 장점은 비자 전환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이다. 경기 지역은 인구와 외국인노동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지만, 인제는 인구소멸지역이어서 E-7-4 비자 전환이 비교적 수월하다. 어르준씨 역시 이번 비자 전환에 인구소멸지역 덕을 봤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을 묻자, 굳이 꼽으라면 월급을 더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장 노동자는 주 5일, 주 2회 휴무, 더 높은 월급을 받지만, 농장 노동자는 휴일이 적고 월급도 낮은 편이다.
기자 역시 “월급과 휴무 등 근로조건 개선은 만국공통 노동자의 요구 아니겠냐”며 이들과 함께 “사장님, 월급 많이 주세요”를 외쳤다.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유행으로 농장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워진 것도 불편 사항 중 하나다. 방역기간이 끝나야 외부 활동이 가능하고, ASF 발생 원인을 외국인노동자로 보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언어·문화의 장벽 넘어…8년의 변화
농장 밖에서의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어르준씨와 로게스씨는 의사소통·음식·문화 차이 등을 꼽았다. 네팔에서 한국어를 6개월 넘게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 왔지만, 현장에서의 소통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주경야독하며 현재는 인터뷰 내내 막힘 없이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회화 능력을 갖췄다.
문화 차이도 쉽지 않았다. 네팔에서는 손으로 식사하는 반면, 한국은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한다. 또 네팔은 종교와 제도적 이유로 소고기를 먹지 않고 돼지고기 역시 기피해 염소고기와 닭고기를 주로 먹는다. 한국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음식이 많아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현재는 소고기는 먹지 않지만, 돼지고기는 섭취한다고 했다. 네팔 음식에는 설탕을 넣지 않기 때문에 한국 음식의 단맛에도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8년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은 생활 환경의 변화를 체감했다. 네팔 출신 노동자가 많아지면서 네팔 음식점이 생겼고, 택배나 송금도 제도 개선으로 훨씬 빨라졌다. 이전에는 2~3일 걸리던 송금이 온라인으로 즉시 가능해졌다. 또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도 이전보다 올랐다.
이처럼 언어와 문화, 음식 적응이라는 초기 어려움을 넘어 이들은 한국 생활에 서서히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30대 젊은 나이에 양돈농가에서 일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일 말고, 재충전을 위한 쉼과 취미는 있는지 궁금해졌다.
두 사람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한국어 공부의 일환이기도 한데, 로게스씨는 “태양의 후예·빈센조·응답하라 1988 등을 재밌게 봤다”고 말했다. 양돈농가 특성상 외부 활동이 쉽지 않고 휴무도 많지 않지만, 이렇게 작은 취미로 일상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하나 중요한 일과는 매일 네팔에 있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것이다. 가족과 대화를 나눌 때는 “어디서 뭐하고 있어요? 돈 필요하나요? 돈 어디에 쓰고 있어요?(웃음)”를 묻고, 가족들은 “잘하고 있어요? 건강해요? 다친 데 없이 안전해요?” 등의 안부를 확인한다. 두 사람은 빨리 돈을 모아 가족과 함께할 날을 꿈꾸며, 이 시간을 마음의 재충전으로 삼았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냐는 질문에, 로게스씨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한국 속담으로 답했다. 어르준씨는 이를 이어 “어차피 어디서든 돈을 벌고, 기술도 배워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가족과 함께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후회할 틈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의 언어 배우는 존중 문화 꽃피길
‘외국인노동자들 없이 한국 농업은 돌아갈까요’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하면서도, 한국인들이 외국인노동자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선 ‘노코멘트’했다.
한국사회가 이들의 입국 초기인 8년 전보다 외국인노동자를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지만, 여전히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청하자 둘은 환하게 웃으며 “사랑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듯, 고용주도 해당 노동자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네팔 정부와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이들은 “네팔 정부는 현재 혁명 중으로 최근 총선을 실시하고, 새 정부가 구성되는 등 민주주의를 향한 과도기에 있다. 하루 빨리 모국이 안정돼 발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네팔의 발전을 위해 후원을 이어오는 등 모국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한국 정부에는 “가족 방문 절차를 간소화하고, 농장과 공장 간 자유로운 이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가족 입국은 최소 한 달에서 최대 3개월까지 걸리고, 성실 노동자로 인정되더라도 직업적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점을 아쉬워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가 “언젠가 함께 술 한잔하며 친구가 되자”고 말하자 두 사람은 웃으며 답했다.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예요. 방역 기간 끝나면 언제든 놀러 오세요.”
인터뷰 ‘農과 함께’는 대한민국의 살맛 나는 농업·농촌을 위해, 이 땅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힘차게 뛰고 있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 심도있게 담아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