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얼마나 될까? 지난 2022년 지방선거의 전국 평균 투표율은 50.9%에 불과했다.
지방선거의 낮은 투표율이 시사하는 것은 ‘지방선거에 대한 기대가 없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그나마 정권에 대한 지지 또는 심판의 의사라도 표시할 수 있지만, 지방선거는 애매하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이 많은 탓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야말로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 선거이다. 싫든 좋든, 일상생활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지역이다. 도시에서는 그냥 생활만 하지만, 농촌에서는 ‘지역이 생활의 공간이자 생산의 공간이고 생존의 공간’이다. 그래서 더더욱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지방선거가 의미 있으려면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필자도 지방선거에서 어디에 투표할지 고민이다.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된 정책경쟁이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사는 지역에서 다양한 정책을 내건 다양한 후보자들이 출마했다면, 그 유권자는 최소한 지방선거에서는 운이 좋은 것이다. 선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유권자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투표용지가 없는 것이다. 지방의원 선거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는 1명을 뽑는 선거에서 1명만 출마하면 무투표 당선이 된다. 찬반을 묻는 투표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무투표 당선을 시키는 것이 지금의 선거법이다. 2명을 뽑는 선거구에서 2명만 출마해도 무투표 당선이 된다.
이런 선거구에서 사는 유권자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유권자의 힘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에서 나온다. 그래야 평소에는 목이 빳빳한 정치인들도 선거 때에는 굽신굽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경쟁이 없으면, 정치인들이 ‘갑’이 된다.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유권자 위에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무투표 당선이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경쟁이 없으면 투표할 맛이 나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는 어느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을 보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지역에서는 최소한 공천 과정에서라도 정책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지역의 주권자들이나 단체들이 서둘러야 한다. 후보자와 정당들에게 정책공약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봐서 공천에 영향을 미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그러나 시도는 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정당이나 후보자의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주민주권 실현을 위해 챙겨야 할 목록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할까? 농촌에 사는 입장에서 크게 두 가지 차원의 요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주민주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읍·면의 자치권이 중요하다. 주민주권이란 결국 ‘우리 지역의 문제는 주민 스스로 결정한다’라는 것이다. 지역의 교육, 의료, 돌봄, 교통, 문화, 주택, 농업, 경제 등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주민주권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농촌의 경우에는 그 결정의 기본단위가 읍·면일 수밖에 없다. 읍·면별로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읍·면의 실정에 맞는 해결 방안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주민들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고, 읍·면에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도 있어야 한다. 또한 이재명정부가 약속한 ‘주민 선택 읍·면장제’도 농촌지역에서부터 시범실시돼야 한다.
한편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주민주권을 위해 필요한 정책도 있다. 형식화돼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를 내실있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 지역에서부터 현안에 대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공론화 조례 같은 것도 필요하다. 정보공개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산을 편성하는 단계에서 작성되는 예산요구서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 지자체의 각종 회의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졸속으로 지방자치단체 간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그만둘 것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인구 규모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 간의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주변부 지역과 농어촌을 소외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간에 통합을 추진하더라도 최소한 주민투표는 거쳐야 한다. 주민투표도 없이 통합을 하겠다는 것은 주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농촌을 위해 챙겨야 할 목록
둘째, 농촌지역의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막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들도 필요하다.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억제하려면 조례가 중요하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환경영향평가조례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조례를 통해서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을 확대하는 등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환경오염이 일어난 경우에는 피해를 조사하고 주민들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 수도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사전고지 조례를 통해서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시설이 들어오려는 것에 대해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가능하다. 환경정책위원회 조례를 통해서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전심사를 거치도록 할 수도 있다. 군계획조례(도시계획조례)를 통해서 산업폐기물처리시설 등의 입지를 제한하고 난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
농업과 관련해서도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전수조사라든지 농산물가격안정을 위한 정책 등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농촌기본소득이 일부 지자체에서는 시범실시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이 훨씬 더 많다. 인구가 줄고 있는 면 지역부터 지자체 차원에서 농촌기본소득을 자체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농촌지역의 의료, 교육, 교통, 빈집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도 필요하다. 최근 국가 차원에서 지역의사제가 도입되었지만, 농촌지역 나름대로 ‘농촌 지역의사제’를 실시해 보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고, 지역실정에 맞는 대중교통 정책도 필요하다. 늘어나고 있는 빈집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런 문제들이 논의되는 지방선거가 돼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주권자의 힘을 극대화하려면
말로는 정책선거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잘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정책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방선거에서는 여전히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느냐가 절대적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정책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정당과 후보자들이 정책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정책을 요구하고 답변하는 것을 봐서 투표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시민사회운동, 주민운동이 쓰는 전략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정책에 관심을 두는 유권자들이 조직돼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개개인이 모이든 조직들이 모이든, 최대한 많이 모여서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먹히려면, 제3의 선택지가 있어야 유리하다. 투표용지에 거대정당 후보만 이름이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정책 요구가 잘 먹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정당 후보든 무소속 후보든 제3의 대안이 있는 것이 의미 있는 지방선거가 되는데 유리한 조건이 된다. 거대정당 후보가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3의 대안에게 투표하는 선택지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선은 정책에 진정성이 있는 제3의 대안세력이 당선까지 되는 것이다.
한편, 지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 외에 국가 차원의 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전남, 전북, 충남, 세종 등지를 관통하려는 초고압 송전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비수도권과 농어촌의 목소리가 무시되고 있는 중앙정치의 현실을 생각하면, 지방선거에서도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입장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예시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지역현장이고, 구체적인 실천이다. 부디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민주권’과 ‘농촌지역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정책’이 쟁점이 되고, 치열한 정책 논의가 이뤄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