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소~오는 누가 키우나”라는 유행어에 화답하듯, 대를 이어 소를 키우며 전국 최연소 이장으로 이름을 올린 정민수(28)씨가 궁금해졌다.
전북 장수군 오옥·월천·옥자동 마을. 주민 65명, 35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의 정민수씨는 2022년 스물다섯살의 나이로 마을 총회를 통해 이장으로 선출됐다.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최연소 이장’의 탄생이었다. 3년 임기를 마친 뒤 올해 다시 이장에 선출돼 벌써 4년차를 맞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저를 키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정 이장은 1998년 오옥마을에서 태어나 29년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고교 시절 잠시 대구로 실습을 나갔던 5개월을 제외하면, 삶의 전부가 이곳에 있다. “어르신들의 젊음과 제 어린 시절이 같이 흘러왔다”는 그의 말에는 마을과 함께 자라온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다.
정 이장은 10대 시절 ‘도시로 나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삶을 통해 농업의 어려움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위암 진단 이후, 그는 축사를 이어받기로 결심했다.
20대 이장의 장점, 추진력과 생동감
지난달 정 이장을 만나기 위해 오옥마을을 찾았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마침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젊은 이장에 대한 평가를 묻자, 어르신들은 “너무 좋다”며 정 이장의 자랑을 늘어놨다.
그가 이장이 된 후 마을에 상수도가 설치되고, 농로가 확장됐으며 배수로 정비, 가로등 설치 등 생활 밀착형 사업들이 이어졌다. 읍사무소와 군청을 오가며 복잡한 행정 절차도 발 빠르게 처리해 약 10억원의 예산을 마을로 끌어오고, 사업 집행까지 책임졌다. 추진력과 생동감이 넘쳤다.
어르신들은 정 이장을 무한신뢰한다. 휴대전화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계좌이체가 어렵거나, 집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나지 않을 때도 즉시 그를 호출한다. 정 이장은 마을 발전과 민원, 생활 문제까지 전방위로 뛰어다니며 해결한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다. 그는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들께서 간혹 상황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실 때,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며 세대 차이에서 오는 조심스러움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몇 해 전 작고하신 멘토이자 전 이장은 그에게 “이장은 속이 썩는 자리”라는 조언을 자주 했다. 민원과 하소연을 들어도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 참고 견뎌야 하는 자리, 그게 이장이라는 의미였다. 정 이장은 “공동체의 리더란 내 주장을 내려놓고 많이 듣는 자리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 3년간 또다시 주민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마을에 열선 도로를 설치해 겨울철 얼음길에도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등을 구상 중이다.
소 키우는 청년, 농축산업의 현실을 말하다
정 이장은 이장인 동시에 한우 농장을 운영하는 청년농민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축사를 기반으로 현재 50여 두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 고추 농사도 병행한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소 사료를 주고 상태를 살핀 뒤 밭으로 나가고, 틈틈이 이장 업무를 위해 면사무소와 군청을 오간다.
지난 4년간 농장을 운영하며 그는 암소의 수정 시기 판단과 출산 보조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번식 행동이 관찰되면 수정을 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고, 난산의 경우 송아지 출산을 보조해야 하지만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성을 쏟아 길러온 덕에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농사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 이장은 농업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날씨가 곧 ‘사장님’이고,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날도 많다.
그는 “그래도 땀 흘린 만큼 보람이 있고, 가족과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건 도시에서는 얻기 힘든 여유”라며 눈을 반짝였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소와 함께 하며 그 곁에서 짬짬이 독서 하는 시간은 그의 힐링 시간이 됐다. 출하할 때 좋은 평가를 받아 소 가격이 잘 책정되면, ‘내가 잘 길러냈구나’라는 보람도 느낀다.
청년이 농촌에 오려면 ‘집’부터 있어야
청년 이장으로서 그는 농촌 인구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마을에도 정 이장 또래가 4~5명 정도 있었지만, 모두 도시로 떠났다.
그는 “청년들에게 가장 급한 건 주거”라며 청년들도 농촌에 대한 이해를 갖고 귀농해야 하지만, 동시에 빈집 정비와 장기 임대, ‘만원 주택’과 같은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농이 늘어나려면 농업 재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생산비 부담 완화, 농민의 휴식권 보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농업 기피 현상을 해결하려면 도시 일자리처럼 다양한 복지와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행정은 반드시 현장을 직접 뛰며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신속한 소통으로 지역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농촌은 기회의 땅”…‘농식품부 홍보대사’ 꿈꿔
정 이장의 또 다른 꿈은 ‘농림축산식품부 홍보대사’다. 보수나 명예가 아니라, 농촌과 농업의 진짜 모습을 알리고 그 가치를 전해 많은 사람이 농촌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젊은 사람이 농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농업의 매력, 농촌의 가능성을 솔직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 이장은 장수군만 해도 사과와 한우 등 맛있는 농산물이 있고, 좋은 풍경이 가득하다며 한참을 자랑했다.
그는 말한다. “욕심은 제 욕심이 아니라, 마을에 대한 욕심만 부릴 겁니다.”
소를 돌보고, 밭을 가꾸며 어르신들의 휴대전화 송금부터 TV 리모컨까지 챙기는 정 이장. 그의 하루는 분주하지만, 그 중심에는 늘 ‘마을’이 있다. 인공지능(AI)에 ‘정민수’를 검색하면 ‘어떤 상황에도 긍정적으로 주민과 마을을 위해 열심히 하는 이장’으로 설명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고령화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농촌에서, 청년 이장으로 오늘도 묵묵히 길을 닦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