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3대 시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경기 안성의 오일장엘 다녀왔다. 1월의 맹추위 때문이라고 한껏 양보하면서 돌아보더라도 이제 찬란했던 옛 명성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역사 속으로 묻힌 규모도 그렇고 민속오일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볼거리 없는 시장 풍경도 그랬다.
안성오일장은 중앙시장과 맞춤시장의 외곽에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자리 잡은 매대들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2개가 서로 연결된 상설시장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열려 있었다. 평일에 차도로 이용되는 곳을 막아 장이 서고 있었는데 상품들은 대부분 비닐 이불을 덮고 있었다. 일단 오전 10시가 넘어서도 기온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영하 10도를 넘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추위에 채소나 과일을 난전에 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얼어도 괜찮은 미역이나 곰피, 냉동 생선 등이 허옇게 얼어붙은 채로 누군가에게 팔려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정도였다. 겨울 채소래야 시금치나 배추, 무, 파 등이 전부인데 사갈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얼고 있어서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보았으나 나라도 이런 날에 거리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을 용기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얼어붙는 건 채소나 과일만이 아니다. 우리의 손발도 얼어붙는 것처럼 시려서 동동거리며 걸어 장을 돌아봐야 했다. 기온이 좀 올라갈 때까지 일단 속을 데우자고 국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안성하면 장터국밥이 이름난 음식이라, 몇가지 메뉴가 있었지만 서로 모의라도 한 것처럼 장터국밥을 시켰다. 사실 음식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식당에 가면 주인이 성가실 정도로 다른 음식들을 시켜서 서로 나눠가며 먹어보는 게 보통이지만 모두 마음은 장터국밥에 있었던 모양이다. 손바닥만 하게 큰 덩어리의 선지가 들어간 국밥의 맛이 제법 좋았다. 배추 우거지를 삶아 듬뿍 넣고 매콤하게 끓이는 방식이 안성식 국밥인 것 같다. 장터를 다 돌고 돌아오기 전 가서 먹었던 노포의 국밥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모두 자기 가게만의 개성있는 맛으로 다투어 손님을 부르며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국밥으로 속을 따뜻하게 채우고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근처의 카페를 검색해 갔는데, 안성맞춤시장 외곽에 있는 곳으로 원래는 50년 된 문구점을 인수해 카페로 바꾼 곳이었다. 문구점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젊은 감각으로 재구성해 살려놓고, 남은 공간에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데 커피 맛도 아주 좋았다. 나오면서 메모장을 한 권 사고 다시 오일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장터는 큰 변화 없이 여전히 한산했다. 생선류를 사고 싶은 사람들만 몇몇이 어물전 앞을 서성이고 있을 뿐이었다.
한산한 장터를 어슬렁거리다 자기 건물을 가지고 있는 서울떡집이란 간판이 붙은 떡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말린 호박고지만을 넣은 떡과 호박을 갈아 넣고 거기에 호박고지를 더 넣어 삶은 팥의 붉은색과 늙은 호박의 노란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떡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고 사서 맛도 보았다. 색과 모양만 아름다운 떡이 아니었다. 늙은 호박이 나오는 11월경 시작해 호박이 떨어질 때까지만 판다는, ‘짱짱한 서사’를 가지고 장사를 하시는 주인장의 철학도 색과 형태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오일장은 언제 어디서나 북적거려야 제맛이다. 오일장은 마트 같은 정형화된 곳에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어야 갈 마음이 생긴다. 또 상인과 흥정을 하면서 덤을 얻는 재미가 있어야 더 찾게 된다. 오일장은 세련된 포장은 없지만 바로 만들어 파는 뜨끈한 두부 같은 온기로 따뜻해야 찾는 맛이 생긴다. 한산하기는 했지만 안성장터에도 바로 만들어 들고 나온 두부가 있어 동행한 지인은 지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두부를 손으로 집어 봉지에 담는 모습에서 돌아가 먹을 두부의 고소한 맛을 상상하게 된다. 두부를 만들면 반드시 나오는 비지도 같이 판다. 신김치와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고 찌개를 끓이면 맛있겠다. 곧 설 명절이 돌아오니 두부랑 같이 들고 나왔을 만두피도 보인다. 찹쌀만두피라는 이름에서 들어간 재료를 짐작하고 또 만들 때의 손맛도 느낀다. 두부는 으깨고 돼지고기와 신김치는 송송 썰어 넣고 속재료 만들어 만두도 빚고 싶다. 이웃하고 나누면 더 맛있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우리가 안성오일장을 찾은 날은 해뜨기 전 영하 15도까지 내려간 날이어서 손발이 다 얼어붙는 추위로 떨었다. 물건을 들고 나온 상인들도 몇몇뿐이고,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도 드물게 지나가는 날이었다. 시장 경제도 어렵다고 하는데 때맞춰 장날에 쳐들어온 한파로 정말 모든 게 다 얼어붙은 날이었다. 그래서 다시 찾아야 할 오일장으로 기록해둔다. 다음에 찾았을 땐 오래 전 우리나라 3대 시장의 위용을 느껴보고 싶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