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2월 개식용 전면 금지를 앞두고 보신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한여름 보양식의 대명사였던 보신탕이 저무는 자리를 염소탕이 빠르게 메우는 모습이다. 조리법과 맛이 보신탕과 닮은 데다 고단백 음식으로 소문이 나면서 어르신은 물론 젊은층까지 찾는다. 하지만 늘어난 수요의 몫은 값싼 외국산 고기가 차지하게 되자, 오히려 국산 염소농가의 한숨 소리가 크다. 보양식 한 그릇에 담긴 변화의 풍경과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염소, 보양식의 강자로 떠오르다=초복을 앞두고 방문한 경기 성남 모란시장. 한 식당은 테이블 곳곳에 손님이 들어 앉았다. 들깻가루와 부추를 얹어 보글보글 끓인 염소탕을 앞에 두고 저마다 땀을 훔쳤다. 경기 수원에서 왔다는 60대 박모씨는 “오늘은 평소 즐겨 먹던 보신탕 대신 염소탕을 먹으러 왔다”면서 “막상 먹어보니 맛에 큰 차이가 없고 고기도 부드러워 먹기 편하다”고 했다.
한때 ‘전국 3대 개고기 시장’으로 불리던 이곳의 풍경이 달라졌다. 자리를 지키던 보신탕집은 하나둘 염소탕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시장 초입에는 ‘모란흑염소특화거리’라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변화의 방아쇠를 당긴 건 2024년 8월7일 시행에 들어간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개식용종식법)’이다. 이 법에 따라 2027년 2월7일부터는 식용 목적으로 개를 기르고 도살·유통·판매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
보신탕의 빈자리는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맛으로 개고기와 가장 닮았다는 염소고기가 채운다. 모란시장에서 10여년째 식당을 운영해왔다는 한 상인은 “예전엔 손님이 죄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뿐이었는데, 요즘엔 보양식으로 염소탕을 찾는 젊은층도 부쩍 늘었다”고 했다.
◆염소, 보양식으로 주목받는 이유=염소고기가 개고기를 대신할 수 있는 건 맛과 조리법이 비슷해서다. 얼큰하게 양념해 끓인 탕, 채소에 버무린 무침처럼 즐기는 방식이 별반 다르지 않다.
염소고기가 여름 보양식으로 부상하는 데는 풍부한 영양 그 자체도 한몫한다. 염소고기는 고단백·저지방 식재료로 철분이 많아 혈액 생성을 돕는다. 농촌진흥청 ‘국가표준 식품성분표’(2016)에 따르면 염소고기 100g에는 철분 2.73㎎이 들어 있다. 이는 성인 남성 하루 철분 권장섭취량(평균 10㎎)의 약 27%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몸에 활력을 주는 비타민B·E가 들어 있어 여름철 기력 회복에도 그만이다.
전통 의학서 ‘동의보감’에는 염소고기가 체력 보강, 피로 해소, 소화 기능 향상에 기여한다는 기록이 있다. 강용혁 경희마음자리한의원 원장은 “한여름엔 땀을 많이 흘려 속이 냉해지기 쉬운데, 이때 따뜻한 성질의 음식으로 기력을 보충할 수 있다”며 “염소와 개 모두 따뜻한 성질의 고기로 몸에 열을 내고 단백질을 보충해준다는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염소 뜨는데, 농가는 왜 울상?=보양식으로 염소탕이 주목받지만 정작 사육농가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요가 몰리면 값이 오르는 게 상식인데, 국산 염소값은 거꾸로 우하향했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염소 생축 평균 경락값은 6월 기준 1㎏당 6193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1만5013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런 역설이 발생한 건 보양식 수요 증가 혜택을 국산이 아닌 저렴한 외국산이 가져간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염소고기 소비량(추정치)은 2020년 6328t에서 2024년 1만3708t으로 두배 이상 늘었지만 수요와 공급의 간극은 호주 등에서 들여온 외국산으로 채워졌다.
같은 기간 염소고기 수입량은 1161t에서 8143t으로 급증하며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실제 모란시장 흑염소식당 5곳을 둘러본 결과 모두 호주산을 팔고 있었다. 충북 충주에서 염소 500여마리를 키워온 민원기씨(65)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염소식당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대부분 외국산 고기를 쓰니 국내 농가는 판로 확장을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농식품부는 올해 2월 ‘염소산업 발전대책’을 발표하고 2029년까지 산업 기반 구축과 제도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호주산이 밀려들며 농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올해 FTA 피해보전직불금 지원대상 품목으로 염소고기를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강원 철원의 한 흑염소농장 대표는 “사료와 건초 등 생산비는 눈에 띄게 올랐는데, 염소 가격은 오히려 떨어져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면서 “FTA 피해보전직불금을 신속하게 집행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