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하림 기자]
“모든 농민이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수확해야 하는데 외국인노동자를 안 쓸 수도 없고….” 경북 상주시에서 감·포도·오이 등을 재배하는 농민 박정길씨가 한탄했다.
그는 사전 허가 없이 근무처를 변경한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했다가 지난 5월 범칙금 300만원을 부과받았다. 이는 박씨만의 일이 아니다. 모서·모동·화동·내서면 등에 사는 농민 100여명은 현재 수백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았거나,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상주시농민회(회장 전성도)는 당장 일할 사람이 없는 농촌의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 때문에 생긴 상황이라며, ‘상주시농민회 농촌인력대책위원회(대책위)’를 발족하고 정부·국회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상주 농민들, 범칙금 무더기로 부과돼
일의 발단은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당 지역에선 인력중개업체 A사를 통해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업체를 운영하는 B씨가 불법적인 고용 알선을 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그 과정에서 A사를 통해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한 농민들도 함께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조사 대상에 오르게 됐고, 올봄부터는 농민들에게도 출석요구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출입국관리법」 제21조의 외국인이 근무처를 변경하거나 추가하려면 법무부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따르면 A사가 알선한 외국인노동자 대부분은 근무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계절근로자였다.
졸지에 범칙금을 물게 된 농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이러한 규정이 있는지조차 몰랐을뿐더러, A사가 정식으로 등록된 인력중개업체라 합법적인 인력을 소개해준 줄 알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범법인 것을 알게 되더라도 농촌 인력 구조상 이런 일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업 특성상 일손이 필요한 시기는 파종·수확기 등 단기간에 몰려 있는데,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선 단기간에 많은 인력을 수급하기 어렵다.
농가가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합법적 방법 중 하나인 외국인 계절근로제도를 살펴보면, 5~8개월간 장기 고용해야 해 농가의 인건비 부담이 큰 데다 한 농가에서 고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도 9명(지자체에 따라 최대 14명)으로 제한돼있다.
박씨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9명을 고용 중이다. 하지만 감을 수확하고, 곶감을 깎는 등 바쁜 시기가 되면 일손이 30명은 필요하다”며 “합법적으로 30명까지 쓰려면 한국인을 고용하는 수밖에 없는데, 한국인 인력을 구하는 건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농민들은 사설 인력중개업체에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이번 사례와 같이 범법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법무부가 발간한 ‘2025 외국인 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설 인력소개소를 이용한 이유(1+2+3위)로 ‘짧은 기간 필요할 때만 인력을 고용할 수 있어서(64.7%)’와 ‘다른 방법으로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50.9%)’를 꼽은 농민이 많았다.
우리 정부는 이런 문제의 대안으로 공공형 계절근로제를 운영하고 있다. 농협 등이 계절근로자를 고용·관리하고, 농가 수요에 따라 하루 단위로 인력을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현장에선 공공형 계절근로제로 원하는 만큼의 인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농민을 범법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농번기임을 감안해 농민들에 대한 조사를 일시 보류한 상태다. 농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 만큼, 범칙금도 최대한 감경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다.
하지만 대책위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농민 피해 최소화를 넘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출입국관리법」 제21조를 개정해 고용 유연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미 개정안도 발의됐다. 임이자 국민의힘 국회의원(경북 상주·문경)이 지난 7일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기존 근무처와 인접한 지역에선 계절근로자가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아도 일시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간단히 말해, 이웃 농가가 바쁠 때는 내가 고용한 계절근로자가 잠깐 가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는 계절근로자가 근무처를 바꾸려면 특정 조건과 절차를 충족해야 하며, 다른 농가 계절근로자를 잠깐 빌리는 형태는 불가능하다.
대책위는 관광취업 비자(워킹홀리데이) 확대를 통한 인력 수급도 제안했다. 관광취업 비자를 가진 외국인은 특별한 허가 없이 유연하게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만큼, 워킹홀리데이 체결국을 넓혀 농촌 인력 수급을 꾀하자는 구상이다.
대책위는 이미 청와대에 현재 상황을 설명했으며, 차후 청와대·농림축산식품부·법무부 등에 요구서를 전달하고 간담회도 요구할 예정이다. 더불어 농촌 인력 부족 대책을 고민하는 토론회를 열거나, 범국민 서명 운동을 추진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