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정부가 최근 공개한 ‘3대 메가프로젝트’의 후폭풍이 여러모로 거세다. 반도체산업과 관련해 정부는 속도전의 일환으로 용인시스템반도체국가산업단지(용인국가산단)의 완공 시점을 앞당기겠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용인산단만을 위해 추진되는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전국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 의사를 다시금 명확히 한 셈이다.
농촌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방 신규 원전 등 지역에 가할 부담이 이미 과중한 상황에서 송전선로까지 떠넘기는 행태 하나만으로도 지역 입장에서 재검토를 요구할 당위는 충분하다. 그러나 사실 명분은 그뿐만이 아니다. 사전 검토 과정에서부터 산단의 안전성과 미래가치에 이르기까지, ‘졸속’, ‘부실’로 수식하기에 충분한 요소가 산재해 있으나 수도권 중심의 여론전에서 아직 주류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 대통령도 이를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
그 다수의 이유를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한 설명회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봤다. 경기환경운동연합은 하승수 공익법률센터농본(농본) 대표와 이봉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초청, ‘용인반도체국가산단, 재검토돼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하승수 “부지 검토조차 없었던 ‘졸속’ 계획”
하승수 변호사는 ‘농촌을 위한 공익법률센터’를 지향하며 지난 2021년 농본을 세웠다. 설립 이래 지금껏 난개발 등에 위협받는 전국의 수많은 농촌공동체를 위해 개발사업의 사실관계 파악과 법률적 대응에 나서왔다. 마찬가지로 이 계획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본 하 대표는 이 사업이 정상적인 절차와 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졸속’이라고 단언했다.
용인국가산단계획은 지난 2023년 3월 15일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말과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이날 바로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710만㎡가 부지로 지정됐다. 하 대표는 이 발표가 있기 전까지 해당 부지의 입지적 용이성을 따지는 어떠한 사전적 검토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용인국가산단은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의 요청으로 후보지에 지정됐는데, 이날 함께 발표된 타 14개 산업단지 후보지가 전문가 평가위원회의 서면검토와 현장실사, 종합평가를 거쳐 최종 선정된 점과 크게 다르다.
하 대표는 “갑자기 툭 튀어나와 끼어든 용인이 이날 발표의 ‘메인’이 됐다. 당시 시행된 반도체 특화단지 공모에서 전남·광주가 이미 최고점을 받았는데, 용인은 진행된 절차와 무관하게 나중에 끼워맞추기 식으로 평택과 함께 발표된 것”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은 2023년 당시 공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용인이 이때 누군가에 의해 끼어 들어왔는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해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결정된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에 대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당시 진행된 특화 산업단지 공모에서 이미 전남·광주가 최고점을 받았었단 단편적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하 대표는 정부가 산단 부지 지정 이후에야 부지의 용이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던 점 역시 관련 자료를 통해 검증하며, 이 계획이 지난 정부 말기 추진됐다 금세 부실·급조성 시도로 판명된 ‘대왕고래 프로젝트’ 사례와 굉장히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까지 열며 경북 포항 영일만에 대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있다는 추정을 갑자기 내놓았지만 그 근거는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의 작품이었고, 주무부처가 대통령의 발표 이후에야 부랴부랴 움직였다는 사실도 금세 드러났다.
하 대표는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송전선로 건설을 동시에 추진한 경우가 없다. 그러니 전국이 난리가 났는데, 한전 내부 자료를 보면 송전선 시공물량이 평소 대비 5배까지 늘어나고, 2030년에는 자재와 인력이 모자랄 정도”라며 “산단 지정의 핵심적인 요건이 전력 및 용수 공급의 용이성인데,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지금이라도 취소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마땅하고 법치주의 원리에 맞다. 행정기본법 상으로도 위법·부당한 행정 처분은 취소할 수 있도록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 이전에 선행돼야 할 것이 바로 진상규명 작업이다. 도대체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이런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진상규명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봉렬 “‘대국민 사기극’…RE100·균형발전과도 정면 배치”
이봉렬 기자는 38년간의 업계 노동 이력을 바탕으로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반도체 특별과외’라는 이름의 시리즈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윤석열정부가 지난 2023년 3월 용인국가산단 계획을 전격 발표하기도 전, 그는 이미 이 시리즈의 초반부에서 윤석열정부의 반도체 인력양성 계획 발표를 계기로 ‘반도체 팹(공장)을 지방으로 보내야 한다’고 썼다. 인구 이동과 일자리 창출 등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이미 포화상태인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보내자는 이야기로, 이후 당선되는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핵심 국정기조 ‘지방분권’·‘균형성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주장이었다.
이 기자는 용인에 산단을 지어선 안 되는 이유를 다섯 가지나 제시했다. 우선 용인국가산단계획을 ‘대국민 사기극’이라 단언했는데, ‘시스템반도체’ 생산단지로 언급된 이 계획이 정작 실사용자인 삼성전자의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삼성의 현주소와 내부 취재원의 언급을 바탕으로 용인산단이 설령 완공되더라도 삼성이 이를 시스템반도체 공장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이 기자는 “원래 이름대로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단지가 우리나라 용인에서 실제로 구현될 가능성은 0%”라며 “삼성은 대신 (현재 수요가 넘치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사용할 것이고, 용인은 지어봐야 원래 계획과는 다른 게 된다. 이것은 사기이니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유들은 국가첨단산업의 안보나 국민 안전과 같은 더 중요한 사안과 직결돼 있다. 이 기자는 “반도체 공장의 분산배치는 원칙이고 ‘글로벌 스탠다드’다. 생산 중단의 리스크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일본·중국·대만·프랑스 등 반도체 공장을 보유한 타국의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우리나라 수도권처럼 생산시설이 한 지역에만 집중된 사례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해외 공장의 입지에 빗대 유독가스와 산성폐수가 누출될 위험이 있는 반도체 공장을 도심지 인근에 짓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여러 사고 사례와 함께 비추고, “더 이상 이래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국가와 산업의 미래를 위해선 반도체 공장이 지방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오랜 주장을 다시금 설파했다. 이재명정부가 균형발전·지방분권·미래산업 기반을 위해 제시한 ‘5극3특’ 전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RE100 실천을 위해서도 공장을 지역에 두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것.
그는 “애플, MS 등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요구하는 등 RE100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선택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라며 수도권으로의 재생에너지 공급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삼성은 공장을 호남에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언급하고, 우리나라가 다른 선택을 하기에 아직 늦지 않은 시점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기자는 아직 해당 부지의 보상 협의 절차조차 마무리되지 않았고, 인근 SK하이닉스의 일반산단과는 달리 부지 선정 과정에 있어 절차의 문제도 분명하게 보이는 만큼 중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