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산물가격안정기금(농안기금)의 자금유동성 악화 문제가 또다시 표면화됐다. 정부 밀 수매대금 정산이 3개월가량이나 지연 예고되면서다.
밀 재배농가들은 지난 3일을 전후해 밀 정부수매 대행사들로부터 ‘수매대금 지급이 9월로 지연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밀 수매가 이뤄지는 기간은 통상 6월 중하순부터 한 달 정도. 예년엔 수매 후 일주일 정도면 정산이 완료됐는데 올핸 3개월 정도나 지체된다는 얘기였다.
이유는 수매 자금인 농안기금의 자금유동성 부족이었다. 농안기금은 농산물 수급안정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기금으로, 정부출연금과 기금 자체 운용수익금(비축농산물 판매, 국영무역, 융자금 이자수익 등)이 주된 재원이다. 수시로 자금을 출납하는 만큼 잔액 변동이 많은데, 올해 월별 잔액 규모를 보면 많게는 2000억원에서 적게는 200억원까지 큰 폭을 보인다.
밀 수매에 필요한 예산은 물품대까지 포함해 약 300억원. 일시적이긴 하지만 이 300억원을 지출할 유동성이 부족해 수매대금 지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밀 수매대금 지연은 자칫 농가 영농계획 및 가계지출에 차질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밀 생산현장에선 일대 혼란이 일었다.
현장의 목소리가 결집되기 시작하자 농식품부는 빠르게 상황 수습에 나섰다. 농안기금의 다른 출납 일정을 최대한 조정해 밀 수매에 우선 사용키로 한 것이다. 6월 수매분은 7월, 7월 수매분은 8월 식으로 수매 시점으로부터 한 달쯤 뒤에 순차적으로 대금을 정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여전히 늦은 정산이긴 해도 충격적인 그림은 피한 셈이다.
기금을 직접 관리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측은 “실무자가 다른 부분(타 사업 기금 출납)이 늦어지는 문제를 우려해 보수적으로 고지한 듯한데, 내부 회의에서 운용 스케줄을 조정해 빠듯하긴 하지만 최대한 빨리 지급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응급처치가 이뤄지긴 했지만 마음이 편한 상황은 아니다. ‘농안기금 운용이 빠듯하다’는 이야기는 최근 몇 년 사이 농식품부 안팎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왔고 이미 콩 등에서 몇 차례 수매대금 정산 지연이 발생한 바 있다. 농안기금 유동성이 언제든 농민에게 실체적 피해를 안길 수 있을 정도로 악화돼 있음이 이번 사태로 재확인된 것이다.
유동성 악화의 원인은 단순하다. 2020년을 전후해 농산물 생산에 기후위기 등 각종 악재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농안기금의 지출 규모와 지출사업 항목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반면 수익은 제자리 상태다. 정부출연금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고, 수매비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방출하기 어려운 상황도 잦아졌다.
연간 농안기금 평균잔액을 보면 2018년까지만 해도 4000억원대를 유지하던 것이 2019년 2646억원, 2020년 1335억원으로 급감, 현재까지 수백억원 내지 1000억원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농안기금의 적정유동성 규모는 1584억원으로 산정되는데 잔액 규모가 여기에 거의 상시적으로 미달하는 상황이며, 올해 상반기 기준 평균잔액은 763억원이다.
박은영 농식품부 유통정책과장은 “농안기금에 정부출연 증액이 필요하다 해도 일반회계에서 바로 전입받을 수 있는 구조가 못 된다. 기금 운용에 관련해선 농안기금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와 협의하는 중”이라며 고민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