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신문= 연승우 기자) 농업 현장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주요 채소류 가격은 하락세가 장기화되고 있고, 일부 농가는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수확을 해도 손해이고, 출하를 미뤄도 손실이 커지는 구조라면 이는 정상적인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비료·농약·포장재·면세유 등 농자재 가격 부담까지 겹치면서 농가 경영은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할당관세 연장과 수입농산물 확대 정책을 반복하는 것은 농업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처방이다. 먹거리 물가 안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부담을 국내 농업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수입 확대가 단기적으로 소비자 가격을 일부 낮출 수는 있어도, 국내 생산 기반을 약화시키면 결국 수급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가격이 이미 하락한 상황에서 추가 수입을 확대하는 것은 가격 회복의 싹을 자르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CPTPP 가입 논의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CPTPP는 기존 FTA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통상협정이다. 농산물 관세 철폐율이 높고, 검역·위생 기준 변화까지 맞물릴 경우 과수·축산·채소 등 민감 품목 전반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농업계가 오랫동안 생산 기반 붕괴와 농가 생존권 위협을 우려해 온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내 농업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농업계와의 사회적 합의도 없이 가입 논의를 이어간다면 이는 농업을 협상 카드로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통상정책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따져야 하지만, 그 이익이 특정 산업의 일방적 희생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식량안보와 국민 먹거리 기반을 책임지는 생명산업이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CPTPP 가입 논의가 아니라 농가 경영 안정 대책 마련이다. 농산물 가격 폭락을 방치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가격안정 장치를 마련하고, 농자재값 폭등에 대응할 직접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 반값 농자재 공급, 생산비 보전, 농가소득 안전망 구축 등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국내 농업 기반이 무너진 뒤에는 어떤 물가 대책도, 어떤 통상 이익도 국민의 식탁을 지킬 수 없다. 정부는 CPTPP 가입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농업계와 충분한 협의 속에서 국내 농업 보호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방의 속도가 아니라 농업을 지키겠다는 국가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