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신문=김채은 기자) 기후위기와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농촌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농업 생산 기반은 점차 약화되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마을 공동체를 빠른 속도로 붕괴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재생에너지를 단순한 발전사업이 아닌 주민의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연결하려는 ‘햇빛소득마을’ 정책이 새로운 농촌 활성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주민이 발전사업의 주인이 되고, 발생한 수익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주민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협동조합과 마을회는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공공부지와 계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 정책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지난 1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마을이 주인이 되는 햇빛소득마을 과제 점검 토론회’가 열렸다.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서울대학교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햇빛배당전국네트워크가 공동 주관한 이번 토론회에는 국회와 정부, 학계, 현장 전문가, 주민대표들이 참석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점검하고 향후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햇빛소득마을, 농촌의 새로운 성장전략 돼야”
문금주 의원은 환영사를 통해 햇빛소득마을이 단순한 태양광 정책이 아니라 농촌의 미래를 좌우할 새로운 지역발전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현재 우리 농어촌은 기후위기와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생존의 위기 앞에 서 있다”며 “그동안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은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외부 자본의 이익을 위한 사업으로 추진되면서 지역사회에 갈등과 상처를 남긴 경우가 많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햇빛소득마을을 제시했다. 햇빛이라는 공공 자원을 활용해 주민이 직접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그 수익을 마을 공동체에 환원하는 구조야말로 기존 재생에너지 정책과 가장 큰 차별점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햇빛소득마을은 외부 자본 중심의 재생에너지 사업 구조를 넘어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에너지 전환 모델”이라며 “농어촌 재생에너지 시장이 대기업 중심이 아닌 주민과 마을 중심의 공정한 상생 구조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주민들은 이미 준비가 돼 있다”며 “이제는 정치가 응답하고 제도가 뒷받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현실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계통 연계 부족 ▲공공부지 활용 기준 미비 ▲주민 자부담 조달 문제 ▲표준 규약 부재 ▲금융 지원 체계 부족 등이 사업 추진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꼽혔다.
그는 “이번 토론회가 현장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국회도 주민 중심의 공정한 재생에너지 시장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성공의 열쇠는 주민 주도성”
이어진 인사말에서도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햇빛소득마을은 단순한 발전사업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재협 서울대학교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센터장 역시 햇빛소득마을의 본질은 태양광 시설 확대가 아니라 에너지 민주주의 실현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발전용량이 아니라 누가 소유하고, 누가 의사결정을 하며, 발생한 수익을 어떻게 공유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진정한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전환을 넘어 관계의 전환이자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재생에너지 사업이 외부 자본 중심이었다면 햇빛소득마을은 주민이 직접 사업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정책 실험이라는 설명이다.
양적 확대보다 성공모델 구축 우선
이날 토론회에서는 여러 차례 공통적으로 언급된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주민 참여’와 ‘공동체 회복’이다. 참석자들은 햇빛소득마을을 단순히 태양광 발전시설을 보급하는 사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발전소가 많아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 스스로 사업을 이해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발생한 수익을 다시 마을의 복지와 공동체 활성화에 투자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특히 사업 초기에는 양적 확대보다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700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참고할 수 있는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향후 전국 확산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중앙정부 중심의 일방향 추진체계를 넘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전문지원조직,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법률·회계·갈등 조정 등을 상시 지원하는 지역 중간지원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에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거버넌스 재정비 없인 햇빛소득마을도 없다”
햇빛소득마을 정책이 단순한 태양광 보급사업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주민이 주인이 되는 재생에너지’를 지향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주민 주도라는 정책 목표와 실제 사업 구조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발제는 지현영 서울대학교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의 ‘마을이 주인이 되는 햇빛소득마을 거버넌스 제언’이었다.
“주민 동의가 아닌 ‘주민 결정’으로”
지 변호사는 현재 사업 구조가 주민 참여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법적 주체와 의사결정 주체가 분리돼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현재 햇빛소득마을은 협동조합이 사업을 수행하는 법적 주체가 되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법인격이 없는 마을회가 맡는 구조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에는 큰 문제가 없더라도 향후 수익 배분이나 운영 과정에서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법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 변호사는 “주민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동의서를 제출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업의 소유권과 통제권, 의사결정권을 갖는다는 의미”라며 “협동조합과 마을회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으면 공동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양적 확대보다 신뢰할 수 있는 우수 모델 발굴에 집중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전문지원조직이 함께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와 현장 밀착형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여주시 구양리 사례를 분석한 결과도 소개됐다. 현재는 공동체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협동조합 조합원과 마을 전체 주민 사이에 권리와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구조가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공부지·계통·금융 지원 선결돼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동규 햇빛배당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은 햇빛소득마을이 지역소멸과 농촌 고령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공공부지 확보와 계통 우선접속, 주민 자부담 금융지원, 공동체 역량 강화 등 현장의 핵심 과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선제적인 공공기관 부지 정보 제공과 우선접속권 입법, 에너지 공동자산형 자치규약 마련 등을 추진해야 한다며, 사업이 단순한 태양광 발전을 넘어 지역순환경제와 복지, 돌봄 등 공동체 사업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현장 밀착형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속도보다 성공모델”…공동체 역량 키워야
토론자들도 주민 공동체 역량 강화가 사업 성공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권상동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현재 공모사업은 발전시설 설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제 성공 여부는 공동체 역량이 좌우한다”며 “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사회적경제지원조직 등 기존 지역 조직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성복 완주 서봉마을 주민협의회 사무장은 “주민교육 없이 사업부터 추진하면 결국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예비마을 단계에서 교육과 선진지 견학, 주민 토론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주영 여주시 구양리 이장도 “올해는 사업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 전국이 참고할 수 있는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햇빛소득마을 제도 개선·현장 지원 강화”
정부도 현장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제도 개선 의지를 밝혔다.
허정민 햇빛소득마을추진단 기반조성과장은 “공모와 평가 과정 역시 하나의 학습 과정”이라며 “올해 사업을 추진하면서 나타난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지방정부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 이양도 단계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지방정부의 준비 정도에 차이가 있는 만큼 올해 경험을 토대로 내년에는 보다 많은 역할을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소형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에너지정책과장은 공공부지 확보 문제와 관련해 “현재 농어촌공사가 보유한 저수지와 비축농지 등 활용 가능한 부지를 통합검색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권역별 설명회를 통해 현장 안내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영농형태양광법 시행에 맞춰 햇빛소득마을이 농지와 영농형태양광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며 “농지 활용은 청년농 육성과도 연결되는 사안인 만큼 현장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관계기관과 협의를 통해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우제환 기후에너지환경부 태양광산업과 사무관도 “계통 문제는 현장의 가장 큰 과제인 만큼 내부적으로 해결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배전망 ESS 사업도 예산당국과 협의를 거쳐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업을 서류와 제도로만 접하다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고민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관계 부처와 함께 사업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