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돼지수의사회(회장 엄길운)는 14일 수의사회관에서 농축산전문지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2~3년간 전 세계적으로 가축 바이러스의 변이, 대륙 간 이동 및 종간 전파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기존의 방역 상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방역정책도 발생 후 통제 중심에서 벗어나 바이러스 변화와 유입 가능성을 사전에 탐지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등 주요 바이러스성 질병에서는 과거와 다른 숙주 범위, 전파속도 및 병원성이 관찰되고 있다. 일부 해외 발생 바이러스는 유전적으로 유사하더라도 국가와 숙주에 따라 임상 피해가 다르게 나타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어, 유전자 분석만으로 위해도를 단정하지 말고 국내 분리주에 대한 현장입장에서의 위해도 평가와 차단 대책, 처치방법 수립 등을 병행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바이러스 자체의 진화만이 아닌 국제 물류, 야생동물 이동, 기후·생태 변화 및 축산환경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인수공통감염 가능성까지 고려해 수의·환경·보건 분야가 함께 참여하는 상시 위험평가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발생한 병원체가 국내로 유입되는 경로를 과학적으로 추적하고 규명하는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과거 주요 질병의 유입 원인을 여행자, 오염축산물 또는 접경지역의 야생동물 이동 등 특정 요인으로 단정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 역학조사와 유전체 분석, 물류 및 이동자료를 결합한 다각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유입 원인을 밝히는 것은 책임 소재를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동일한 경로를 통한 재유입을 차단하고 다음 질병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해외에서는 병원체의 기원과 이동경로를 장기간 추적해 수입검역과 현장방역을 개선한 사례가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유입경로 조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 역시 새로운 질병 위험을 높이고 있다. 해수온 상승과 생물종의 북상, 모기·진드기 등 절지동물 매개체의 서식범위 확대는 기존에 국내 발생이 드물었던 질병의 정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해외에서 유행한 PRRS 등 생산성 질병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국내에 유입됐던 경험을 고려하면, 수입축산물·사료원료·사람·차량·장비 및 야생동물 등 다양한 경로를 대상으로 한 미래위험 감시가 필요하다.
해외 유행주를 조기에 확보해 국내 백신과 진단법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현행 방역 시스템은 현장과 맞지 않는 일률적 SOP와 비과학적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질병 발생 시 오염 가능성이 있는 차량·장비·도구의 세척과 소독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거나, 획일적인 검사기준이 적용되면 방역효과가 떨어지고 현장의 신뢰도 약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제역 항체검사에서 일정 두수를 일률적으로 채혈하는 방식은 농장 규모, 백신접종률, 예상 유병률 및 요구되는 신뢰수준을 고려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표본 수의 통계적 근거와 검사 목적을 공개하고 농장 위험도에 따라 표본설계를 차등화해야 한다.
SOP는 단순히 기준만 맞으면 되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는 실효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산업동물 의료체계에서는 항생제 사용 감축과 수의사 처방제의 실효성 확보가 시급하다.

국내 돼지 분야의 항생제 사용 수준과 내성 문제를 개선하려면 처방전 발행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농장별 질병진단, 투약이력, 백신·사양관리 및 항생제 감축성과를 통합 관리해야 한다. 이를 전담할 전문인력의 활용,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방역체계 재정비 과정에서 민간 임상수의사를 예방단계부터 핵심 주체로 포함해야 한다. 한국돼지수의사회는 농장 주치의 제도, 권역별 거점동물병원 및 공제제도 등을 통해 정부·농가·민간수의사가 역할을 분담하는 선순환 구조를 제안했다.
특히 여러 시·군을 묶어 진료, 질병검사, 수의사 연수 및 공공방역 기능을 통합 수행하는 거점동물병원은 지역 산업동물 의료 공백을 줄이고 신규 수의사의 현장 진입을 지원할 수 있다. 민간수의사가 상시 농장정보를 축적하고, 위기 시 공공방역과 연계되는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
신규 돼지수의사 유입이 정체된 현실도 해결해야 한다. 개업 수의사 수가 증가하더라도 기존 경력자의 독립이 대부분이라면 장기적인 인력 기반은 강화되지 않는다. 수의과대학에서 산업동물 교육이 축소되고 공중방역 경험 이후 농장동물을 기피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교육환경, 근무조건, 안전 및 전문성 인정체계를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농장과 산업 전반에 걸쳐 돼지수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수의사도 안전한 축산물 공급과 동물용의약품의 책임 있는 사용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축산물 위생관리, 농장 질병관리 및 방역정책 수립 과정에서 수의사단체의 역할과 책임을 제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