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기후변화와 질병 확산으로 양봉산업이 위기에 놓인 가운데, 꿀벌을 단순한 축산 자원이 아닌 농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화분매개체로 보고 국가 차원의 질병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질병으로 인한 꿀벌 폐사가 매년 반복되며 농가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관리하고 지원해야 할 국가차원의 방역 인프라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전문인력·정책 태부족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 양봉산업 위기 대응 및 질병관리 체계 구축 정책토론회’에서는 국내 양봉 방역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 것은 현장의 위기를 관리할 전문인력과 예산 부족이다.
현재 정부 ‘꿀벌질병관리센터’는 기생충 분야 업무를 병행하는 연구관 0.5명과 연구사 1명 등 최소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담당 공중방역수의사도 배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 기반 역시 부족하다. 국내 수의과대학 교육과정에는 양봉 관련 전문 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꿀벌 질병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의사를 양성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구조다.
주제발표에 나선 최옥봉 경기도북부동물위생시험소장은 경기도 사례를 통해 현행 질병관리 지원체계의 한계를 설명했다. 경기도는 도내 약 3000개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질병 컨설팅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농가 자부담 비율이 40%에 달하면서 실제 신청 농가는 9곳에 그쳤다. 이마저도 5개 농가는 비용 부담 등으로 중도 이탈했다.
여기에 질병 발생 시 농가에 대한 보상체계가 미흡하다 보니,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를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정확한 진단 없이 검증되지 않은 약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바이러스 내성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가 “이대로는 못 버텨”
양봉농가들은 국가 차원의 질병 진단과 방역 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박길호 화성시양봉협회장은 “10년 새 벌이 줄어드는 상황을 체감하고 있다”며 “농가 스스로 약제를 선택해 대응하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으며, 국가 차원의 질병 진단과 방제 체계가 가동돼야 한다”고 했다.
박근호 양봉협회장은 “꿀벌은 꿀 생산을 넘어 농업 생산을 유지하는 중요한 자원임에도 정부 정책이 전무한 실정”이라며 “화분매개 기능을 고려해 양봉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양봉산업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 사육 농가 지원이 아닌 생태계 유지를 위한 공익적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인 개선 방향으로 △방역 인프라 및 행정체계 강화 △질병 보상제도 마련 △질병 컨설팅 지원 확대 △스마트 양봉 및 치료기술 연구개발 강화 등이 제시됐다.
국회 입법 추진·정부 제도개선 검토
국회에서는 최근 관련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송옥주 의원은 최근 「가축전염병 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꿀벌질병관리센터 설치 근거와 보상제도 마련 등 국가 차원의 관리 지원체계 강화를 위한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지원 확대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황성철 농림축산식품부 과장은 “기존 산업수의사와 임상수의사를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하고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소규모 농가의 컨설팅 부담 완화와 민간 검사기관 활용 확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 역시 곤충 생리학 연구와 데이터 기반 관리 등을 포함한 다부처 공동연구를 추진 중이며, 이 결과를 정책 기반 마련과 농가 지원으로 연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기사의 주제와 관련된 작물·수입·가격 정보는 추후 제공될 예정입니다.